인공지능(AI)은 세상을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신체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방대한 기술의 집합체에 의존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조직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계적 지능이 인간, 곤충, 식물, 동물,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풍경과 같은 유기적 지능과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공지능과 이를 통해 작동하는 자율적 개체들의 부상 앞에서, 우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지능의 정의를 다시 질문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풍경을, 독특하고 신비로운 존재 방식들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지능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지능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바꾸어, 인간성을 중심이 아닌 많은 것 중 하나로 재배치할 수 있을까요? 곤충,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적 존재들, 즉 ‘대지’로 묶이는 이들이 지능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인간이 기술 발전을 통해 창조해낸 인공지능은 우리가 조직화하고 진화해 온 자연적 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땅거미 지는 시간》은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하여, 전통적으로 ‘지능’과 ‘지식 체계’로 여겨져 온 개념들을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탐구합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직접적인 경험과 감각적 만남을 통해 학습하며, 인간과는 다른 지능들과 함께 살아갈 기회를 제시합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리서치와 교류를 토대로 캐나다와 한국의 예술가와 기획자가 함께한 여정을, 2025년 1월 전시로 선보입니다. 땅거미 지는 시간 When Spiders Spin Dusk 2025년 1월 3일 (금) – 1월 18일 (토)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27) 월 ~ 토 오전 11시 ~ 오후 6시 휴관일: 일요일 입장료: 무료 전시 관련 문의: 010-4705-0076 참여 작가: 마우리스 존스, 이선주, 언메이크 랩, 에리카 진 링컨, 프랑수아 퀘빌론, 황선정 프로젝트 기획: 김정현 & 루이자 지 프로그램 프로듀싱: 우카이 프로젝트 전시 기획: 김정현, 협력 우카이 프로젝트 전시 코디네이터: 김예지 후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국제공동기금 그래픽 디자인: 폼레스 트윈즈 공간,가구 디자인 및 설치: 가가구죽 미디어 설치: 곰디자인 생명을 망각한 문화에서 보편적 호흡 찾기 김정현 큐레이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10월, 인류 지능 발전의 지표이자 그 공로를 인정하는 노벨상의 물리학상과 화학상 두 부문에서 최초로 인공지능 연구자가 수상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는 노벨 위원회마저도 인공지능을 인류의 지능으로서 인정하고 그 본격적인 등장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능이 그 어느 때보다 발전했다고 믿어지는 시대를 맞이한 반면, 그에 대한 밝은 미래에는 왜인지 모를 불투명한 감정이 뒤따른다. 발전한 기술이 인류가 지닌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밝은 청사진과 더불어, 그것이 언젠가 우리를 압도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대와 우려의 중간지점에서 《땅거미 지는 시간》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그 기술이 형성해 온 문화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땅거미’의 어원은 한국어로 크게 두 가지 뜻을 지닌다. 가장 먼저, 해가 진 뒤 어스름한 상태인 박야(薄夜)를 뜻한다. 낮도 밤도 아닌,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 오늘날의 기술이 인류에게 수혜인지 재앙인지 모를 시간을 의미한다. 한편, ‘땅거미’의 또 다른 해석으로, 말 그대로 땅에 사는 거미를 지칭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천재 예술가 ‘아라크네’가 자신의 베 짜는 실력을 믿고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따냈으나, 결국 아테나의 노여움으로 저주를 받아 거미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그로부터 많은 재능을 지닌 시람으로 거미는 많은 우화와 신화 속에 등장해 왔다. 이러한 신화 속 이야기를 알지 못하더라도, 거미가 주변 환경의 구조를 읽고 모서리를 이어가며 거미줄을 직조해내는 능력은 오늘날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대상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의 역할과 닮아 있다. 즉,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시기, 그리고 그로부터 예술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23년 11월, 캐나다 토론토 기반의 비영리 기관이자 인공지능 분야에 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는 우카이 프로젝트(UKAI Projects)를 프로젝트에 초대하였다. 협업의 과정에서 우리가 주요하게 고려했던 것 중에 하나는 역사적 스토리텔링 기법과 문화적 신념이 기술 시스템을 어떻게 확산시키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탐구가 사람들이 인공지능, 기후 위기, 생태계에 대해 더 나은 이야기를 나누고 들려줄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거라고 믿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언어로 대화를 지속해나가는 과정은 마치 다른 토양에서 자란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하나의 바구니를 직조해나가는 과정과 유사했다. 아름다운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의 두께와 길이를 솎아내고 색을 선별해나가는 과정이 있듯, 우카이 프로젝트를 포함한 6명(팀)의 참여작가는 서로가 지닌 언어의 온도를 맞춰나가면서 각자의 경험을 여러 갈래로 조직해나갔다. 이렇듯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은 이 프로젝트의 중심을 이루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호혜적 상호작용은 사람과 사람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기술과 생태, 지형으로 이어져 나갔다. 이는 어떻게 하면 한 경험이 다른 경험과의 연관 속에서 평가절하되거나 다수성으로 소멸되지 않으면서, 그 많은 경험들을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가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우리가 꾸준히 질문하고자 했던 것은 기술과 자연, 인간을 관계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날 미디어와 기술의 발전에 있어 지금 순간의 기술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광물과 천연자원들이 급격히 고갈되어 가고 있다. 네트워크 라우터에서 배터리와 데이터 센터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시스템의 확장된 네트워크에 속한 모든 요소는 수십억 년에 걸쳐 지구 내부에서 생성된 원료를 단기간 내에 훼손하고 소진시킬 것이다. 인간의 편의와 번영을 위해 이용의 대상이 되어온 자연은 기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용하는 착취 관계 또는 편리 공생(Commensalism)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의 손길은 자연과 기술을 지나 결국 사람에게로 향한다. 주지하다시피,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데이터를 생산, 가공하는 일에는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의 저임금 노동력이 투입된다. 뿐만 아니라, 대화형 인공지능에게 가해진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이 문제가 됐던 많은 사례들로부터 인간이 계속해서 만들어 온 종속된 관계를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이 가속화될수록 소수에 의한 계층구조와 편향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를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한쪽이 다른 쪽을 통제하며 이익을 얻는 구조적 관계의 고리를 끊고 오늘날의 기술 환경에서 보다 동등한 관계를 이루는 방법은 없을까. 소설가 한강의 표현을 빌려,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이자 서로를 연결해주는 언어’를 탐색하기 위해, 지난 9월 한국과 캐나다의 기획자와 연구자, 예술가는 퀘벡주 웨이크필드에 위치한 농장에 모였다. 그리고 함께 밥을 지어먹는 것으로 시작해, 숲 속을 함께 거닐며 버섯이나 풀벌레 소리를 채집하고 그곳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알아가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와 관심사는 서로의 것을 교차하고 경유해 나가면서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갔다. (그 관심사는 마치 네트워크 시스템처럼 엉켜있어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정리하기에는 어렵지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주요하게 세 개의 내용으로 나누었다.) 먼저, 생태적, 문화적, 기술적 시스템 간의 상호연결성을 탐구해 온 황선정과 에리카 진 링컨의 작품세계를 “행성적 연결(Planetary weaving)”이라는 키워드로 연결시켜 볼 수 있다. 황선정은 직조(weaving)의 개념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섬유를 엮는 기술이 아닌, 자연, 인간, 기술 사이의 깊은 연결성을 형성하는 다층적 행위로 해석하고, 나아가 데이터와 물질, 시간적 층위를 직조해 지각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보았다. 비물질적인 방식의 직조 방법을 고민한 작가는 <일탈하는 날실의 베>(2024)를 통해 전통적인 직조 개념에서 ‘씨실’을 제거하고, 날실(warp)로만 이루어진 다공성 나무(porous tree)의 형태를 고안한다. 작가가 리서치 기간 동안 수집한 미생물, 버섯 포자, 조류(algae) 등의 이미지 형상들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성된 나무의 다공적 시스템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시간, 사건, 존재의 얽힘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황선정이 지구의 존재들을 엮어나가는 데에 몰두했다면, 에리카는 자신의 몸을 흐르는 물과 지구를 흐르는 물 사이의 연결성을 찾고, 나아가 GPS와 같은 기술을 의인화하여 기술로부터 나타나는 글리치 현상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써내려 간다. 다음으로, 마우리스 존스와 언메이크 랩은 기술을 사회와 문화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역사와의 연결선 상에서 바라본다. 흑인 사회가 생존해 온 급진적인 방식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구현하려는 블랙 테크네(Black techné)의 개념으로부터 마우리스는 도망친 노예들이 자립적인 공동체를 구축했던 ‘마로니지(Marronage)’의 흑인 사회의 역사를 현대의 머신 러닝 기술에 적용함으로써, 기술이 기존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해방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합성 민속지학의 맥락에서 인공지능에 내재된 잠재공간에 관하여 탐구해 온 언메이크 랩은 ‘박제술’과 ‘트로피 헌팅’ 이미지를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그 안에 깊숙이 자리해 온 식민주의적 관행을 드러낸다. 이들은 리서치 기간 동안, 여러 박물관과 수장고를 방문하며 동물의 사체를 인위적으로 보관하는 박제에 담긴, 동물을 상징화하고 물질화했던 장면들을 목격한다. 이와 더불어,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인간의 문화와 관습이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이미지에 특정 오브제예를 들어, 트로피 헌팅 이미지에서는 백인 남성, 소총, 황혼의 사바나로 나타나는 현상을 마주하며, 마치 오랜 기간 습관에 의해 길러진 근육을 닮은 이것을 ‘근육 데이터’로 명명한다. 마지막으로, 이선주와 프랑수아 퀘빌론은 오늘날 생태적 위기에 있어 예술이 어떠한 실천과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관한 생태학적, 지질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이선주의 <헤아림>(2024)은 습지에 사는 박테리아가 일으키는 전기화학 작용을 활용하여, 기존의 전력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로부터 탄생한 작품이다. 작가는 시간이나 용도와 같이 인간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지고 판단되는 시스템에 대해 질문하며, 다양한 미생물 간의 작용으로 인하여 생성되는 전기 에너지를 만듦으로써, 전력을 소비하는 대상에서 돌보아야할 존재로 재해석한다. 캐나다의 협곡, 절벽, 해안가 등 다양한 지형과 그곳에서 서식하는 생태에 관하여 기록함으로써 그 관계를 탐구해 온 프랑수아 퀘빌론은 이번 전시에서 <성장과 소멸>(2024)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페름 랜톤 레지던시 기간 중, 개울가의 다양한 식생과 관찰하고 이로부터 식물이 지닌 생성과 소멸의 구조를 탐구하기 위해 컴퓨터 계산사진술을 활용해 다각도로 촬영하고 인공지능으로 3D 이미지를 생성한 것이다. 그는 기후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은 생태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자연의 스케일로 전시장에 구현함으로써,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이처럼 타자와의 상호작용, 과거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 실천적 행위를 통해, <땅거미 지는 시간>은 비인간 생명체들과의 평등한 교환 관계를 복원하고 함께 숨을 공유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인류가 이뤄온 기술적 성취에 빠져 인간이 생태계 최상위에 있다고 믿었던 자만과 그 성취가 뿜어내는 매연에 질식한 상태에서, 다시금 살아 있음을 느끼고 보편적으로 함께 호흡해 나가는 방법을 우리는 땅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식물의 숨은 동물과 인간 존재들을 숨 쉬게 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호흡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결국, 우리 안팎의 존재들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알아가는 일은 우리가 환경과 맺는 유대의 끈을 놓지 않고 다른 세계를 지배하려는 목표를 갖지 않는 대안적 문화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글의 제목과 전문에 등장하는 '보편적 호흡'은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의 'Through Vegetal Being'의 글에서 그 개념과 표현을 차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