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근원적으로 코러스였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춤, 음악, 시를 동원해 삶의 고통과 비참함에서 관객을 위로하고 구원했던 코러스를 진정한 예술로 보았다. 차이를 가진 여러 목소리가 하나로 노래하는 집단인 코러스는 듣는 이의 감정까지 통합하는 힘이 있었고 관객은 코러스를 통해 무대 안의 비극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삶의 문제를 미학적으로 초월할 수 있었다. 2024년 코리아나미술관 *c-lab 8.0은 그리스 비극에서 출발한 코러스에 주목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바라기보다 지금 여기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기에 우리는 코러스의 힘, 즉 공동의 비극을 공동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가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합창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소리를 냄에도 불구하고 코러스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건 타인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따라서 *c-lab 8.0은 다름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아니라 충돌과 만남에서 비롯된 공동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가능케 하는 예술 실천에 집중하고자 한다. *c-lab 8.0은 코러스를 위한 안전한 연습실이 될 것이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몸으로 합창을 수행하며 무대 밖의 관객에서 무대 안의 코러스로 변신/이입할 것이다. 예술 실천의 시간을 거친 *c-lab 8.0의 합창이 더 많은 관객에게 닿기를 희망하며, 훗날 우리가 마주한 비극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의 성장과 가상 환경의 팽창으로 몸은 전례 없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동시대 미술은 유동적인 물질로서 몸에 대한 사유를 확립해왔지만, 오늘날의 변화는 이전의 것과는 다르다. “분절된 몸, 연결된 몸, 사이보그의 몸이 과연 몸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몸의 필요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몸 담론은 매체를 표현 수단이자 확장된 도구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언제나 신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축소했다. 신체의 확장된 논의를 위해 2023년 코리아나미술관 *c-lab 7.0은 우리가 마주한 변화를 매체와 신체를 중심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도구를 창조하고 사용하는 주체(subject)로서 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체인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는 더 이상 기술적 대상에 의해 위협받지 않고 비인간, 사물 그리고 모든 영역의 매체와 동등한 조건으로 만난다. *c-lab 7.0은 물질적인 ‘몸’에 갇혀 있던 매체-신체를 해방하여, 우리는 몸의 한계를 초과하는 ‘실재’를 감각할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을 실험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우리의 인지 체계를 넓힐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다양한 신체를 수용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개방하고자 한다.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는 한 생물 집단이 다른 생물 집단과 함께 진화한다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진화의 패러다임이 한 개체가 아니라 다른 개체(종), 더 나아가 사회 구조, 기술 환경까지 확장됨을 의미한다. 공진화는 공생과 달리 적대 관계에서도 발생하는데, 이는 모든 개체가 언제나 각자의 생존을 위해 중첩되어 진화했다는 것을 일깨운다. 전지구적 위기 앞에 모두가 공생적 사유를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나와 연결된 존재를 느끼는 감수성(sensibility)’의 회복이다. 우리가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 또는 무엇이 우리에게 기대어 있는지 말이다. 2022년 코리아나미술관 *c-lab 6.0은 ‘공진화’를 키워드로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당면한 생태적 문제를 몸의 감각과 예술의 경험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c-lab 6.0에 모인 여러 관점은 서로 교차하며 개체 간의 관계를 재창안하고, 연결을 회복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로써 낯선 존재와 나의 진화가 서로 공명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길 희망한다.
예술은 이따금 정신적인 충동이나 흥분과도 같은 색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일상과는 다른 종류의 깨어있음을 일컫는 ‘트랜스(Trance)’는 오랜 기간 예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종교화부터 추상미술에 이르는 여정도, 연극이나 무용과 같은 공연예술의 전개도 트랜스를 경유해왔다. 기술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신체성에 대한 재고가 다분한 지금, 예술은 어떤 차원의 트랜스를 견인하고 있을까? 더불어 트랜스의 상태를 발현시키는 신체는 어떤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을까? 그간 신체, 여성, 퍼포먼스를 중점으로 전시와 연구를 심화시켜온 코리아나미술관은 2021년 *c-lab 5.0을 통해 ‘정신성(Spirituality)’으로 그 논의를 이어간다. 트랜스를 키워드로 지금의 신체성과 정신성이 어떤 좌표를 그리고 있는지 탐구하며, 예술과의 동시대적 관계를 다각도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다양한 분야의 주체들과 함께 하는 올해의 연구 과정은 감각적이고도 실천적인 고민의 시간이 될 것이다.
‘언택트(Untact)’의 출발점은 ‘컨택트(Contact)’이다. 우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고립과 연결, 대면과 비대면 등 서로 상반된 속성들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은 초연결사회 안에서 지구 반 바퀴의 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크린의 두께만큼 가까워졌고,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의 확산은 신체의 흔적이 지워진 ‘언택트’ 방식의 일상화를 가져왔다. 크고 작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들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금 누군가의 신체와 신체가 마주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기술은 어떤 역할과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관계들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코리아나미술관 *c-lab 4.0에서는 ‘관계’를 주제로 “언택트 UN+CONTACT”라는 제목 아래 동시대 사회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의 형태와 방식들을 살펴보며, 새로운 가능성과 실천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하나의 병명에 준하는 명칭으로서 ‘증후군(症候群, Syndrome)'은 비정상성 혹은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삶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세계의 축적과 풍화가 일어나는 곳이라 할 때, 증후군은 그저 삶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와 관계, 시공간의 발현일지 모른다. 이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떠한 상태와 태도,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코리아나미술관 *c-lab 3.0 : 증후군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우리의 몸 안, 바깥, 혹은 언저리에 존재는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증상들과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몸의 현상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들의 교차를 통해 누군가의 세계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통로로서 ‘증후군'을 다시 읽고 써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의 ‘감각(感覺, Sense)’은 불완전하다. 몸의 여러 감각을 통해 수집된 정보의 파편들은 유기적으로 하나의 경험적 형태를 만들어내고 나름의 의미를 생성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온전한 실재일까? 인간은 완벽한 듯 보이는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 맺으며 착각과 오류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존재 방식에 있어 필수 불가결하다.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시각에 집중해 있던 미술의 역사 안에서도 신체를 비롯한 다양한 감각의 담론들이 등장하며 ‘감각’은 중요한 주제로 조명되어왔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매체 환경의 발달은 인간이 감각하는 방식과 경험의 지평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으며, 오늘날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와 가상의 감각에 대한 논의 또한 가능케 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맞이하게 될까? 2018년 코리아나미술관이 진행하는 *c-lab 2.0에서는 “감각±(감각 플러스마이너스, Senses±)”라는 제목 아래 감각이 지닌 다양한 층위를 탐구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인류의 시작부터 ‘아름다움(美, Beauty)’은 끊임없이 다뤄져 온 가치이자 개념이다. ‘미의 추구’ 라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형식들이 끊임없이 사회에 존재해 왔으며, 오늘날 그 형태는 더욱더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을 들여다보면, 동시대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논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가. 코리아나미술관은 아름다움이란 친숙한 주제에 대한 낯섦을 안고 2017년 *c-lab 1.0을 시작한다. 두려운 친숙함과 낯섦, 가장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으로부터의 출발. 그것은 어쩌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현대문화에서 ‘미’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코리아나미술관은 새롭게 시작하는 연간 프로젝트인 *c-lab 1.0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실천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