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b 7.0 토크
지난 3월 2일, 코리아나미술관 *c-lab 7.0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 연구자가 모여 함께 올해의 주제인 매체-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c-lab과 함께 매체와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고 오는 7월에 워크숍, 퍼포먼스, 렉처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최선주: *c-lab 7.0의 시작에 앞서 올해 프로젝트로 참여하는 세 분, 권태현, 전보경, 후니다 킴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선 세 분,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올해의 주제인 신체성을 그동안 어떻게 고민해오셨는지요?
전보경: 저는 2016년부터 타인의 신체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어요. 그 시기에 다뤘던 신체는 많은 경험을 축적한 몸이었어요. 40년 이상 한 직종에 종사해온 수공업자의 몸짓을 찾아보면서 오랜 시간 장인과 함께한 도구가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지 혹은 변형되는지 기록하는 작업을 했고요. 2020년부터 기술에 의해서 변형된 신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산업화를 겪으면서 신체가 어떻게 분절되고 절단되고 재단되는지 고민하다가 “기술이 정말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면 기술을 통해 본연의 신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방향성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전보경, Zeros: 오류의 동작, 2채널 HD 비디오, 13분 20초, 2020
후니다킴: 저는 주로 아파라투스apparatus*라고 부르는 ‘환경 인지 장치’를 제작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뿐 아니라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모든 것이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우리가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 나의 행동, 이 공기의 흐름까지 포함하는 게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 관점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앞으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키보드, 마우스 같은 인터페이스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혹은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의 인터페이스 감각에 대해 집중하고 싶어요. 덧붙여서 제 모든 작업은 관객이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냥 시각적 대상으로만 존재해요. 그래서 어떻게 관객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 인터페이스의 표면surface, 즉 대상들의 면과 면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 찰나의 순간에 접촉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로스loss’ 없이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후니다 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데이터스케이프 2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권태현: 저는 작년에 안무가와 협업으로 안무 또는 코레오그라피를 유니티 엔진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링크]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는데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컴퓨터가 익숙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키보드의) WASD 키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안무가로부터 “왜 WASD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왜 하필 그 키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충격을 받았죠. 왜냐하면 저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웃음) 이때 인터페이스 그리고 이 신체를 번역하는 문제에 서로 합의되지 않은 컨센서스consensus*가 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마치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처럼요. 어떤 인터페이스에 익숙하냐에 따라 다른 신체 경험을 갖기 때문에 인터페이스와 신체 사이의 번역이 중요해진 거죠. 그래서 저는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탐구하는 것이 신체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c-lab 프로젝트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신체의 관계를 구체적인 국면에서 그리고 특히 게임과 관련된 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인터페이스를 뜯어보는 작업을 하고 싶고요. 가능하다면 후니다 작가님이랑 같이 협업하는 워크숍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최선주, 후니다 킴: 시간이 되면 (웃음)
Q2. 동시대 예술에서 매체-신체의 의미
최선주: *c-lab 7.0의 주제처럼 매체와 신체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데요.
그런데 기술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잖아요. 특히 최근 인공지능의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죠.
동시대 예술도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은데 세 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후니다 킴: 그런 이유로 한동안 굉장히 우울했어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나중에도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매트릭스 The Matrix> 같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미래 기술이 작년까지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진짜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트랜스 휴먼’이라는 개념도 이론적인 접근에서 그치지 않고 전뇌화*된 ‘트랜스 휴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거죠.
전보경: 요즘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도 많고, 현실에서 행복을 찾기 정말 어렵잖아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전뇌화를 더 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후니다 킴: 꼭 그런 이유 아니어도 편하기 때문에 하고 싶을 것 같아요. “몸은 맨날 피곤하고 불편한데 그냥 전뇌화하죠, 뭐” 이렇게.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신체가 왜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놓을 수가 없어요.
권태현: 그런데 전뇌화하면 영생할 수 있나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에 나온 전뇌화 모습
그다음에 동시대 예술 안에서의 신체 혹은 예술가의 신체의 의미에 대해 답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좀 고민이 되네요. 음, 저는 안 하고 싶어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아서요.
후니다 킴: 만일 전뇌화를 한다면 오감을 구현하기 위해 감각이 전자화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면서 학습된 파라미터가 작동할 텐데요. 하지만 신체가 실제로 경험하면서 얻는 정보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거든요. 그건 확신합니다. 그래서 전뇌화된 감각과 실제 감각이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미 기술은 막을 수 없이 진보하고 있어요. 새로운 기술이 좋은지 나쁜지 따지려는 게 아니라 “공존할 방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요. 물론 가장 효율적인 건 기다렸다가 뉴럴링크Neuralink[링크]가 개발되면 내 머리에 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부유한 사람이 얻는 것과 가난한 사람이 얻는 것이 달라지겠죠? 감각의 경험까지도요. 저는 이러한 상황을 “가속화되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신귀족주의의 탄생”이라고 말하곤 해요. 그리고 부유층이 신체 감각을 더욱 활발히 쓰고 반면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가상공간 안에서 제한된 감각으로 살 것 같아요. 거부와 수용의 관점보단 어떻게 기술과 공존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전보경: 저는 안 할 것 같은데요. 조금 전에 <매트릭스>를 말씀하셨는데 영화를 보면 어떤 사람이 배신의 대가로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자기가 원래 먹었던 그 스테이크 맛이 아니라 뇌에서 그 기억 혹은 감각을 다시 불러일으킨 거예요. 그것처럼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과 100% 똑같은 센싱sensing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의문이에요.
후니다 킴: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인데요. 전뇌화를 통해 같은 감각을 인식하는 건 할 수 있을 듯한데, 그게 얼마나 트랜스 되고 실제 감각과 섞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뇌화 기술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 어떻게 이 기술과 공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에 제가 쓴 아티클[링크]에서도 ‘작아지는 신체 감각’이란 문장을 사용했는데요. 저는 신체만이 가질 수 있는 더 복잡하고 많은 파라미터와 감각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어요.
전보경: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그 미래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요.
권태현: 저는 전뇌화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너 전뇌화 안 하고 어떻게 살아?”라는 질문이 나오는,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 취급을 받을 시대가 우리가 죽기 전에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저는 최근의 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신체의 물질성’과 이어져 사이키델리아psychedelia*가 다시 한번 부각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래서 최근엔 1960~70년대 LSD가 어떻게 시각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관심갖고 있어요. 전뇌화, 포스트 휴먼, 인터페이스 그리고 신체의 물질성을 느끼게 하는 사이키델리아. 이런 문제가 제가 탐구하고자 하는 중요한 축이 될 것 같습니다.
Q3. *c-lab 7.0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매체-신체란?
최선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벌써 *c-lab이 풍부해진 느낌이 드는데요.
*c-lab 7.0에서 진행할 프로젝트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권태현: 제겐 프로젝트를 어떤 형식으로 내놓을 것이냐가 문제인데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넓게는 워크숍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겠죠? 그래서 실제로 기기를 뜯어본다거나 게임을 하면서 혹은 게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신체와 번역의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거나 서로 만나게 하는 거죠. 마치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파티를 하는 것처럼요.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인터페이스 차원에서의 언어 교환? 번역?
후니다 킴: WASD 키 사용법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따지고 보면 서로의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잖아요.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둘이 만나서 “어떻게 대화 안에서 재밌는 지점을 찾아야 할까?”와 같은 고민이네요. 물론 여기에 공통 언어는 있고요.
“인터페이스 차원의 무지한 스승”
권태현: 맞아요. 공통어가 있다는 게 흥미롭죠.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책 『무지한 스승』에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 강사의 일화가 나오잖아요. 학생은 프랑스어를 모르고, 선생은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상황에서 프랑스·네덜란드어로 번역된 책 한 권을 가지고서 학생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상황인데요. 네덜란드 말을 못 하는 바보 같은 선생임에도 소통의 방법을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만드는 게 흥미로웠어요. 요약하자면 저도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인터페이스 차원의 무지한 스승을 시도한다거나…지금 막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공통 언어라는 말을 들으니까요.
“다중, 하나의 사물을 하나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바라보게 되는”
후니다 킴: 제가 고민하는 건 개개인의 표면과 표면, 맞닿는 표면이 두꺼워진 상황에서 어떻게 원활히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한 명의 퍼포머가 미술관 주변을 배회하고 관객은 퍼포머가 이 미술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퍼포머는 주변을 인지할 수 있는 시야가 명확하게 확보되지 않도록 설계된 불투명한 막으로 인해 사물들을 흐릿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지만, 눈 앞에 장착된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밖의 환경을 보거나 듣게 되고, 미술관 안에 있는 관객은 휴대폰이나 다른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밖의 정보를 얻게 되는 거죠. 퍼포머가 보고 있는 무언가가 나에게도 전달되는데, 결국은 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걸 보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형된 것을 보게 되고 전시장 안에서는 그 과정을 더 실시간으로 또 다른 형태로 바라보게 되는…그런 구조를 짜고 있어요. 다중, 하나의 사물을 하나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해서 각자 계속 다르게 번역하고요. 그 시간 내에 다 완성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테슬라 자동차가 사용하는 카메라 비전 인식 방식과 비슷한 접근 방식을 활용해 산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할 수 있을까?”
전보경: 저도 많은 매체를 거쳐 이야기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GPT(2023년 4월 기준 GPT-4)를 이용해서 텍스트를 생성하고 그 문장을 인간이 몸에 익혔을 때 나오는 움직임과 변환, 퍼포머가 아닌 관객의 몸에 이입될 때의 차이 등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었을 때 ‘원본’과 같은 것이 어떻게 변화되고 해석되는지, 한 매체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를 거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살펴보고 싶어요. 요약하자면 어떤 텍스트가 전자기적인 자극체로 변환이 돼서 신체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어떤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신체에 가해지는 감각에 대한 연구죠. 궁극적으로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하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집중하고 싶은 건 ‘사운드’에요. 당연히 녹음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사운드를 계속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 순간에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소리, 목소리나 몸의 떨림 등에 집중하고자 해요. 그리고 그것이 ‘퍼포먼스’라는 언어와 만나면서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선주: 전보경 작가님께서는 지금까지 퍼포먼스 필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셨었잖아요. 올해는 좀 더 현장성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라 기대가 됩니다.
전보경: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신체가 아니라 공연장에 가서 무용이나 공연을 볼 때, 실제 몸을 통한 전달감은 되게 다르잖아요. 퍼포먼스는 그 순간 그 공간에서 특정 인원만 경험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이 가장 집약적으로 발현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엔 신체를 통해 내뱉어지는 말 소리, 음성 언어가 인공지능의 바탕이 되는 텍스트화 된 언어와의 차이점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어요.
최선주: 세 분 모두 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상상하고 계신데, 어떻게 나올지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탐구의 시간이 지나 올해의 주제가 더 풍부해지기를 기대합니다.
* 아파라투스: 장치device의 라틴어 어원으로 보통 기계, 장비, 신체적 감각기관 등으로 해석된다. 아파라투스는 대개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기계 또는 기록이나 저장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단순한 기계적 장치의 의미를 넘어 미디어media의 개념으로, 어떤 것과 또 다른 것을 연결하는 통로 또는 채널channel까지 그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
* 컨센서스: 합의, 총의(總意). 구성원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의견을 통칭한다.
* 전뇌화: 인간의 두뇌를 전자화하여 개조하는 것. 컴퓨터와 뇌를 연결하여 뇌의 활동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기술을 뜻한다.
* 사이키델리아: 향정신성 물질에 의한 경험 또는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하위 문화를 의미한다.
인터뷰 진행: 최선주(*c-lab 큐레이터)
인터뷰 정리: 최소연(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