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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7 《자인 – 마리이야기》: 여성, 그 다채로운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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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여성’ 하면 어떤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꽃? 아름다움? 여성 연예인? 혹은 엄마? 여성과 연관된 이미지 목록은 아마 끝없이 나열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여성, 즉 인간의 삶이 하나의 이미지나 의미로 규정될 수 없는, 매 순간 생성 중인 과정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전시에서 코리아나미술관이 주목하는 대상은 바로 ‘여성’입니다.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히스토리
그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는
여성 이미지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하며 여성성의 다층적인 본질을
탐구했던 전시,《자인 – 마리이야기》(2007)를 소개합니다!


#7
자인 – 마리이야기
ZAIN - Story of Marie
2007. 3. 8. - 2007. 4. 28.

참여작가
마리 로랑생, 권소원, 함경아,
사사, 서효정, 한동훈,
윤리, 아나 라우라 알라에즈


여성은 코리아나미술관이 개관한 이래로 꾸준히 연구하여 다양한 전시로 풀어냈던 주제인데요. 그중에서도 《자인 – 마리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여성 이미지와 담론을 재해석하여 여성이 가진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확장적으로 제시했던 전시입니다.

무엇보다 
《자인 – 마리이야기》는 ‘여성’ 혹은 ‘여성성’이라는 것이 사회와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는 하나의 의미화 체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담론과 이미지로 존재해 온 여성은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변화에 따라 성녀, 뮤즈와 같은 마리아 이미지에서 창녀, 마녀와 같은 이브 이미지로 유형화되며 재생산되어왔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된 바, 이러한 여성 이미지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축된 것이었으며, 이것이 다시 여성이 인식되고 재현되는 방식에 개입하여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말하자면, 과거 부계중심사회에서 형성된 전통적인 여성상은 여성 실존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가치와 질서를 시각화한 결과물이라는 것이지요.

1970년대 이후 미술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페미니즘 미술은 이처럼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유형화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여성의 주체적인 시각을 토대로 여성의 특성을 탐구하고 이를 새롭게 제시하는 작업을 전개해나갔습니다. 이후 여성여성성 혹은 여성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던 젠더 연구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특히 《자인 – 마리이야기》가 주목했던 지점은 여성성의 불확정성, 즉 늘 변화하고 생성 중인 과정에서 기인하는 여성성의 유동적 특성입니다. 이는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인 뤼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여성’(woman as the not-yet)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던 지점과도 맞물리지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여성의 의미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범주로서 시각화합니다.

가령, 이러한 작업은 여성의 신체, 심리, 사회적 경험을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재현 방식이 아닌, 여성 주체의 나르시시즘적 시선이나 기존의 에로티시즘과는 다른 여성중심의 에로티시즘의 방식으로 나타내는 전략을 취합니다. 혹은 남성 작가의 경우,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가 경험한 여성에 대한 인식과 성적 정체성이 내재한 양성성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유명 여성 연예인부터 어머니까지 다층적인 여성의 모습을 다루는 
《자인 – 마리이야기》의 작가들은 여성 이미지를 서로 다른 이미지, 텍스트와 접합하거나, 이미지의 안과 밖을 흐리는 방식으로 ‘의도된 모호함’을 연출합니다. 이를 통해 작품에서 의미의 고립을 방해하고 기표들의 의미 작용을 무수히 증폭시키면서 ‘고정되지 않은 하나의 범주로서의 여성’이라는 개념을 가시화합니다.

그럼 이제 《자인 – 마리이야기》 속 여성들을 만나러 갈까요?
# 1.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Marie Laurencin, Three young girls, print, 33x55cm, 1952.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Marie Laurencin, Judith, print, 65x54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은 단순한 참여작가를 넘어 전시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전시의 제목에서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자인 – 마리이야기》 자체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중심 축으로 구성된 전시이기 때문이죠. 마리 로랑생은 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형 특별전시로도 소개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습니다만, 《자인 – 마리이야기》가 기획되던 당시만 해도 국내에 소개된 적이 거의 없었던 낯선 작가였습니다. 《자인 – 마리이야기》전시가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 12점을 선보이며 이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구현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피카소(Pablo Picasso), 브라크(Georges Braque),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등의 저명한 남성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마리 로랑생은 당시 유럽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하던 부르주아 여성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화가로서, 문학가로서, 또한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독립적인 여성 예술가였습니다. 세계1차대전과 망명, 연인의 죽음과 이혼 등 수 많은 굴곡을 겪어야 했던 로랑생의 삶에서 주변 여성들과의 유대는 매우 중요했으며, 이는 작품에서 반복적인 여성 이미지로 나타났지요. 로랑생의 여성들은 왠지 슬픔과 고독에 잠겨있는 듯 하면서도 그 섬세한 필치와 색감으로 인해 꿈을 꾸는 듯 유려하고 서정적이며, 동시에 감각적이면서 관능적인 느낌을 줍니다.


# 2. 사사 Sasa[44]

Sasa[44],      , mixed media, 2007.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작가 사사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의 상속녀,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팝 아티스트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녔던 패리스 힐튼(Paris Hilton)를 미술관으로 초대합니다. 사사의 작품 <ㅍ ㄹ ㅅ· ㅎ ㅌ>에서 패리스 힐튼은 21세기 팝음악씬의 패러다임을 바꾼 여성 아티스트이자, 도발적 행동으로 대중을 놀라게 하는 아방가르드 퍼포머이며, 또한 자신의 신체를 대상화하여 오브제로 만드는 아티스트입니다. 패리스 힐튼의 이름이 수놓아진 분홍색 바탕의 화려한 휘장은 패리스 힐튼의 삶에 대한 사사의 찬양의 표현이자 힐튼을 여성 개척자로서 숭배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이 휘장은 김일성 80주기 현수막 디자인을 차용하여 만들었다는 사실과 함께 패리스 힐튼을 단순한 여성 연예인 가십거리 이상으로 기표화합니다. 패리스 힐튼에 대한 찬양과 기념은 거대한 케이크와 함께 전시의 오프닝 파티로 연장되며 퍼포먼스의 형태로 제시됩니다.

# 3. 아나 라우라 알란 Ana Laura Alaez

Ana Laura Alaez, Make up Sequences, video installation, 5min, 2001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Ana Laura Alaez, still images of Make up SequencesCourtesy of the artist


스페인의 여성 작가 아나 라우라 알라에즈는 자신의 신체를 활용하여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둔 사진과 영상 작품을 선보입니다. <Make up Sequences>에서 화장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바꾸는 작가의 모습은 외모를 변화시킴으로써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하는 여성의 갈망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것에 대한 맹렬한 거부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작가는 보여지는 대상이자 보는 자로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작가의 신체는 남성적인 시선으로 대상화된 여체의 이미지로 표현되기보다는, 여성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여성 중심적인 에로티시즘의 언어로 제시됩니다.



Kwon So Won, Calendar, video installation, 2004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이 외에도, 《자인 – 마리이야기》가 작가들과 함께 다룬 여성 관련 이미지와 담론은 다종다양합니다. 권소원(Kwon So Won) 작가는 열 두대의 텔레비전으로 구성된 영상 설치 작품 <Calender>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구현된 열두 명의 “평균 여성”을 통해 열두 달의 순환 속에서 여성 신체에 부가되는 억압과 여성 신체에서 나타나는 욕망을 표상합니다.





Ham Kyung Ah, Imaginary Mother of Mrs. Park, video installation, 2006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권소원 작가가 “평균”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구체성을 상실하여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된 여성들을 조명했다면, 함경아(Ham Kyung Ah) 작가는 영상 설치 작품 <P씨의 상상의 어머니>와 <나의 사랑하는 메기>에서 누군가의 기억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말 그대로 현실에 부재하는 여성들을 통해 그리움, 추억, 현존과 부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Seo Hyo Jung, The womb as the storage house of memories,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2007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한편, 여성 자궁을 은밀하고 촉각적인 장소이자 인간 최초의 경험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저장고로 해석하는 서효정(Seo Hyo Jung) 작가는 이러한 여성 자궁의 이미지를 인터렉티브 영상 설치 작품으로 구현하며 관객들에게 공감각적인 작품 경험을 선사합니다.








                                                                                                                                                          Han Dong Hun, Anima Animus, photography+video, 2007. Courtesy of the artist

유일한 남성 작가이자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활동 중인 한동훈(Han Dong Hun) 작가는 광고 속 여성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 영상작품으로 제시하면서 여성 이미지의 허구성을 지적합니다. 또한 작가는 여성과 남성이 각각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측면(animus)과 여성적인 측면(anima)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작품 <Anima Animus>를 통해 성적 정체성에 내재하는 모호함과 유동성을 가시화합니다.











Yun Lee, Private World_Beatriz, photography, 2x36x24cm, 2004.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마지막으로, 윤리(Yun Lee) 작가는 여성 초상과 함께 여성들의 직업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정물 오브제를 결합시켜 두 이미지 사이의 유동적인 연상작용을 통해 여성을 의미화하는 사진작업인 <Private World>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여성적’ 장르로 여겨지며 ‘남성적’ 장르인 역사화나 종교화에 비해 주변화되어 왔던 초상화와 정물화는 이 작품에서 여성들의 개별성을 증폭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하며 장르 자체에 대한 재해석을 요청합니다.


《자인 – 마리이야기》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과 여성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여성의 삶에 녹아있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인 정체성을 다채로운 만화경처럼 제시하고자 했던 전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코리아나미술관은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시각적으로 공론화 해왔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여성서사를 다뤘던 《텔 미 허스토리 Tell Me Her Story》(2014),여성작가들의 비디오 영상, 사진 작업 등을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여성주의의 새로운 맥락을 고민했던 《댄싱 마마 Dancing Mama》(2015),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여성 노동의 비가시성 문제를 가시화하고자 했던 《히든 워커스 Hidden Workers》(2018)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코리아나미술관은 신체, 화장 등 인접 영역에 대한 탐구를 경유하면서도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해 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 이어, 다음 편에서도 
‘여성’이란 주제를 다뤘던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전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코리아나미술관, 2020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고문헌

『자인 – 마리이야기 ZAIN – Story of Marie』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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