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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다시 찾은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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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Vol. 404 2018년 9월호 게재 (92p.-93p.)


30년 만에 다시 찾은 미인도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兪相玉


직장인, 전문경영인으로 30년 그리고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경영하는 CEO30, 기업인으로 60년을 지내오며 경제성장과 더불어 나 역시 많은 성장과 성취를 하여왔다. 직장생활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 지인으로부터 너무 숫자만 알면 감성이 메마르기 쉽다라는 조언을 듣고 60년대 말부터 인사동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연구하며 틈틈이 수필과 칼럼을 쓰며 문기(文氣)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며 회사와 관련된 유물을 수집하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길 것이 없다. 수집의 원칙은 내가 하는 일과 연관이 있으면서 문화와 역사성을 지닌 것이어야 했다. 국외 선진 화장품 기업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기업 박물관들을 둘러보며 코리아나 화장품이 선진적인 명품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급쟁이 시절부터 찾아다니며, 모으고, 살피며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하던 나는 박물관·미술관 설립의 꿈을 마침내 실현하였다.


강남 한복판에 박물관·미술관을 개관한 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또한 코리아나 화장품은 창업 30주년을 맞이한다. 특히 화장품 기업을 경영하면서 옛 여인들의 화장유물을 중점적으로 모아왔고 올봄 그동안 모아둔 고미술품과 미술품 전부를 회사법인에 기증하였다. 이는 회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문화예술발전에 힘쓰며 연구와 보존을 위해 각별히 노력할 것을 믿어서이다.


조촐한 기증식에 참석한 유홍준 교수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미인도 벽화의 안부를 물었다. 이 작품은 내가 동아제약 계열사인 라미화장품의 대표이사 사장(1977-1987)을 맡고 있을 때 제작한 가로 9m, 세로 2m 가까이 되는 대형벽화로 새로 신축한 공장 로비에 설치하여 많은 방문객과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 우리나라 화장품 업계는 열악한 환경과 제조 기술 미숙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 화장품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자 했다. 1985년 경기도 이천에 새 공장을 짓고 기술제휴교섭을 위해 미국 엘리자베스 아덴(Elizabeth Arden) 본사를 방문하였다. 그곳 응접실에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이 담긴 회화 작품이 걸려있었다. 순간 화장하는 옛 여인이 등장하는 미인도를 회사 로비에 걸어 두는 이 회사의 아이디어에 눈이 번뜩였다. 우리도 이러한 문화적 자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듬해 봄 한국미술사 강의를 들으며 가깝게 지내던 유홍준 교수에게 엘리자베스 아덴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침 가을에 이천 새 공장에 내가 모아온 유물로 약장()사료관 개관을 준비하던 차에 우리도 미인도를 벽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 시기에 맞춰 화장품 공장 로비에 아름다운 미인도가 같이 전시되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유홍준 교수가 총 기획을 맡아 세계미술사에 나오는 유물과 미인도판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였고,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 앞장섰던 김용태, 김정헌, 박불똥, 이인철, 홍선웅 작가가 참여하였다. 이들이 여름 내내 3개월 동안 땀 흘려 완성한 작품은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800호 대작 미인도이다.


그림은 왼쪽부터 시작하여 시대순으로 이미지를 배열하였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는 제 18왕조 아케나톤(Akhenaton)의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가 거울을 보며 입술 화장을 하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그 오른쪽으로는 중국 남북조시대 뛰어난 인물화가 고개지(顧愷之)가 그린 여사잠도(女史箴圖)에서 용모를 다듬고 있는 여인들,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포함한 유럽 르네상스 미의 삼여신, 우리나라 조선시대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여인들의 모습, 18세기 화려한 로코코 시대를 지나 20세기 현대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미지까지 이어진다. 이 미인도는 모두 동서양의 미술사적 레퍼런스를 담아 화장문화와 연계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다채로운 동서양의 여성들이 치장하는 모습이 담긴 아름다운 작품에 <동서고금東西古今 화장하는 미인도化粧美人圖>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 화장품 회사에서 이런 대규모 작품 제작을 했다는 것이 이례적이었다. 약장사료관과 더불어 미인도 벽화를 여러 매스컴에서 취재하러 오기도 했다.


1988년 내가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한 후 동아제약은 경영이 어려워진 라미화장품을 매각하였고 이천 공장은 제약 공장으로 바뀌었다. 퇴사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모아왔던 사료관의 유물은 가지고 나왔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열정으로 추진한 추억과 의미가 깊은 작품, 미인도는 그곳에 남겨두고 나왔다.


올해 유물 기증식에서 유홍준 교수와의 만남 이후 이천 공장에 걸려있는 그 작품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오랜만에 공장을 찾아가 보니 미인도 벽화는 그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화장을 주제로 한 미인도를 제약회사 공장이 아닌 우리 화장품 회사에서 보존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였다. 그 후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을 찾아뵈었다. 이제 연로하셔서 긴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반갑게 맞이해주신 강 회장님께 나는 회장님 덕분에 동아제약에서 30년의 긴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고 그 후 회사를 창업한 CEO로서 경영과 박물관 운영을 잘하고 있다며 안부 인사를 드렸다. 또한 이천 공장을 건립할 당시 제작했던 미인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현재는 공장이 제약회사로 변경됐으니 이제 그 작품은 저희 화장품 회사에서 보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며 정중히 여쭈었다. 그러자 강 회장님은 이전해서 잘 관리하라고 하시며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둘도 없는 미인도. 그것도 옛 동서양 여인들의 화장문화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코리아나 화장품 광교 사옥 로비로 이전해 작품의 상징성을 높이게 되었다. 지난 7 12일 문화예술과 화장에 대한 나의 애정과 철학이 담긴 이 작품을 공개하는 작은 행사를 가졌다. 작품 제작을 진두지휘했던 유홍준 교수와 5인의 작가 중 김정헌, 박불똥, 홍선웅 작가가 코리아나 화장품 광교 사옥의 로비에서 33년 만에 작품과 재회하는 시간이었다. 제작 당시 혈기 왕성하던 젊은 청년들이었으나 이제는 반백(半白)의 작가로 여러 기관의 단체장을 맡고 있다. 그들도 나와 같이 흥분하여 그림 곳곳을 살피며 제작 당시 에피소드와 함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유 교수는 그림의 도판을 정확히 기억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살다가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하며 몹시 기뻐하였다. 내 젊은 시절 회사를 키우며 문기(文氣)남겼던 미인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우리 회사에서 보존하게 되었으니 , 기쁘다!’ 그림을 그리느라 애써주신 작가 여러분과 그림을 잘 보존해주신 동아제약과 강신호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2018, 8

송파 유상옥 松坡 兪相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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