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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9 《텔 미 허스토리 Tell Me Her Story》: 경계를 넘어서는 여성 서사의 힘

  • 미술관_학예팀

대한민국의 가장 ‘평균’적인 여성의 삶을 그려낸 <82년생 김지영>부터 지구를 지키는 마블 시리즈의 여성 슈퍼 히어로들까지 과거에 비해 대중문화 영역에서 다양한 ‘여성 서사’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소비되는 요즘입니다.

오늘의 전시 히스토리 그 아홉 번째 이야기에서는 지난 《자인 – 마리이야기》편에 이어,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던 코리아나미술관의 또 다른 전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전시는 바로,
픽션과 논픽션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여성 서사의 다성성에 주목했던
코리아나미술관의 개관10주년
기념전시이자
아트인컬처 올해의 전시 기획전 부분
4위를 차지한
《텔 미 허스토리》(2013)입니다!

Image: A K Dolven, Madonna With Man, video installation, 4min 30sec, 2005
Courtesy of the artist

#9

텔 미 허스토리
Tell Me Her Story
2013. 10. 17. - 12. 14.

참여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빅, 델핀 발레,
니콜라 코스탄티노, 나탈리 뒤버그,
아네 카트린느 돌븐, 홍영인,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김나영_그레고리 마스,
쉬린 네샤트, 보리아나 로사,
미카 로텐버그, 율리카 루델리우스, 살라 티카


70년대에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던 페미니즘 미술이 사회와 문화예술 전반에 끼친 영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후 여러 예술 장르에서 사회·정치적 문제와 결부되어 발화되는 여성의 목소리는 많은 경우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거대 서사로 환원되어 해석되는 경향이 다소간 존재했습니다.

미국의 미술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크레이그 오웬스 (Craig Owens)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은 ‘차이’라는 방대하고 획일적인 범주를 가정하고, 그 내부의 다양한 내적인 차이는 무시된 채 하나의 상징, 즉 전체에서 분리된 존재pars totalis로만 인지되어 왔다.” 1는 것이죠.

이러한 맥락 아래, 《텔 미 허스토리》는 무엇보다 기존 페미니즘의 언어에서 누락된 수많은 개념들과 파편화된 이야기들, 특히 여성이 속한 무수한 삶의 범주들이 직조해내는 ‘차이’와 ‘이질성’을 좀 더 세심하게 담아내고자 했던 전시입니다.

특히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와 글로벌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범람이 교육 수준, 인종, 계급, 지리적 위치 등 여성들이 속해있는 수많은 사회 ·정치 ·경제적 조건들과 결합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여성들의 삶을 굴절시켰기 때문입니다.

《텔 미 허스토리》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동시대 여성들의 삶을 마주하며 “개개 여성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것, 상징계로 불리우는 체계 속에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여성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는 것,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리 접근되는 ‘차이’로서의 여성 이야기를 열어두는 것”2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작가의 개인사에서 건져올린 내밀한 이야기부터, 히스테리, 성욕 같은 정신적 질병과 금기의 문제를 너머, 글로벌리즘이 바꾼 여성 노동과 디아스포라의 풍경, 나아가 타자에 대한 조건없는 포용과 환대를 이야기하는 ‘타자의 윤리학’ 에까지 가닿습니다.

이번 전시 <텔 미 허스토리>는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여성작가의 사진, 영상,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여성의 내러티브를 다루고 있는데
주제와 매체의 구체성을 넘어
그려내는 이야기는
매체의 특성 그대로 파편적이며, 집중적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래된 역사, 종교와 문화 속에서 발굴한
여성의 성장, 무의식과 기억이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때로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양은희(미술사학 박사), “여성의 내러티브: 과거와 현재”에서 발췌-
그럼 함께 《텔 미 허스토리》의 작품을 살펴볼까요?

1. 복수적이고 유동적인 여성성이 견인하는 여성 서사의 다채로움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엘렌 식수(Hélène Cixous),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같은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핵심은 바로, 여성성은 결코 하나의 논리로 표상될 수 없으며 다양한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복수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복수적이고 유동적인 여성성을 추구한 다는 것은 
여성성을 단순히 ‘억압된 타자’라는 한 가지 범주로 동일시 하지 않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잉여적 가능성’으로 의미화하는 시도일뿐 아니라, 자기 내부에 공존하는 타자성과 젠더의 전복가능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또한 이는 바로 여성 서사의 다채로움이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Siren Eun Young Jung, The Unexpected Response, single channel video, 4min 35sec, 2009
Courtesy of the artist


이러한 잉여적이고 복수적인 여성성, 여성성과 공존하는 타자성 같은 키워드는 특히 정은영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는 데 유효한 개념들입니다. 작가는 ‘여성국극프로젝트’에서 남성의 역할을 연기하는 여성들이 드러내는 젠더의 수행성과 복수성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여성 범주와 젠더 이분법의 모호함을 가시화합니다.

가령 작품 <분장의 시간>(2009)은 남성 역할을 맡은 세 명의 여성 배우들이 자신을 남성으로 분장하는 행위를 보여주는데요, 이는 성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노년의 여성 신체가 또 다시 남성의 신체와 혼재되는 경계적 순간을 영상으로 드러냅니다.




Delphine Balley, 11, Henrietta Street_La natte  coupée, photography, 86x100cm, 2007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Suzanne Tarasieve, Paris

Delphine Balley, 11, Henrietta Street_Ursula, photography, 69x85cm, 2007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Suzanne Tarasieve, Paris


다른 한편, 델핀 발레 (Delphine Balley)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출 가족 초상화 사진 작품 <앙리에타 11번가>시리즈를 통해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지배욕과 히스테리, 성, 유혹, 죽음 등 기괴하고 이질적인 정신적 질병을 다룹니다.



2. 세계화, 블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여성



Mika Rottenberg, Mary Boone with Cube, digital c-print(1component of Squeeze installation), 162.6x91.4cm, 2010. Courtesy of the artist


냉전을 대체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세계화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모습, 특히 젠더 문제의 양상을 급속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일례로, 
미카 로텐버그 (Mika Rottenberg) 다국적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성차별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실을 위트있게 포착합니다. 작가는 작품 <스퀴즈>에서 비서구권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고부가가치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아웃소싱 과정을 그대로 작품 제작 방식으로 차용하여, 공산품인 동시에 예술작품인 오브제를 생산해냄으로써 글로벌 경제 체제가 활용·강화하는 젠더화 된 노동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Jane Jin Kaisen, The Woman, The Orphan, The Tiger, single channel video, 76min, 2010
Courtesy of the artist

한편, 제인 진 카이젠 (Jane Jin Kaisen)은 아시아의 식민화 과정과 한국의 근 현대사, 지리정치학이 맞물려 만들어낸 역사적 상처와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복원합니다. 그 역시 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되었던 개인사를 갖고 있는 작가는 작품 <여성, 고아, 그리고 호랑이>에서 위안부, 기지촌 여성,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이들의 몸에 새겨진 국가적 관계와 역사의 폭력을 드러냅니다.



3. 여성, 그리고 타자의 윤리학

한편, 본 전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바로 ‘타자’입니다. 특히 보다 확장된 영역에서 억압된 주체들을 포용하며 아우르는 ‘타자의 윤리학’은 오늘날 여성주의 미술의 중요한 쟁점이자 가부장제와 함께 현존하는 여러 억압적인 기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페미니즘 운동은 타자의 요청과 호소에 응답하는 책임적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의 논의에 영감을 받아, ‘여성’을 넘어 게이, 레즈비언, 유색인종, 피식민자 등으로 그 관심과 논의를 넓혀온 바 있지요.



Marina Abramović, The Kitchen1_Levitation of Saint Theresa, HD video installation, 11min 21sec, 2009. Courtesy of the artist



마리나 아브라모빅 (Marina Abramović)은 자전적이고도 신화적인 이야기가 혼용된 작품 <부엌>을 통해 무조건적인 포용과 배려, 모성과 치유를 시각화하며 ‘타자의 윤리학’을 암시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표상합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던 향수의 장소이자, 스페인의 성녀 테레사가 8,000여명의 고아를 먹여 살렸던 장소인 부엌을 배경으로 두 서사를 중첩 사이에서 스스로 신적인 치유의 힘과 타자에 대한 포용의 상징인 성녀 테레사로 분합니다.




A K Dolven, Madonna With Man, video installation, 4min 30sec, 2005
Courtesy of the artist


아네 카트린느 돌븐 (A K Dolven)은 전통적인 성화의 도상인 ‘성모자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 <마돈나와 남자>를 통해 지배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애로운 여성의 힘과 모성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적인 남녀 간의 역학 관계를 역전시키면서 권력관계에 내재된 모호함을 시각화하기도 합니다.

특히 《텔 미 허스토리》의 참여작가인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은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에서도 여성의 서사를 중심축으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전통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지요. 두 전시를 함께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흥미롭겠지요?

다음 편에서도 이번 편과 함께 '여성'의 또 다른 이야기를 주제로 다뤘던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전을 ‘정주행’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더욱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히스토리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코리아나미술관, 2020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고문헌
1. Craig Owens, “The Discourse of Others: Feminists and Postcolonialism”, 
The Anti Aesthetic: Essays on Postmodern Culture, ed. Hal Foster, New Press, 1983, pp. 57-82. (배명지, 「텔 미 허스토리」, 『텔 미 허스토리 Tell Me Her Story』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3, p. 06. 에서 재인용.)
2. 배명지, 「텔 미 허스토리」, 『텔 미 허스토리 Tell Me Her Story』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3, p.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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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특별기획전 <時時刻갓> 전시 해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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