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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12 《정원방문기 Art Through Nature》: 정원을 통해 바라본 인간과 자연의 관계

  • 미술관_학예팀

시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연을 꿈꾸지요. 자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한국갤럽이 매달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조사에서 언제나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비해 자연과의 유대가 눈에 띄게 줄어든 오늘날에도 자연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이 결코 적지 않은 듯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살펴보았던 여성 관련 전시들에 이어, 오늘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인 ‘정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본 전시,
《정원방문기》를 소개합니다!

#12
정원방문기
Art Through Nature
2008. 10. 16. - 12. 06.

참여작가
노재운, 문경원, 박화영
안성희, 윤애영, 이윤진
이창원, 타카기 마사카츠


《정원방문기》는 코리아나미술관의 모기업인 코리아나 화장품의 창립 20주년, 스페이스 씨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로, ‘자연을 통한 아름다움의 예술창조’라는 기업이념을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풀어낸 전시입니다. 이는 전시의 영문 제목이자 핵심 키워드인 ‘Art Through Nature’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Art Through Nature’ ‘자연에서 추출한 원료를 통한 화장품 연구 및 제조’라는 모기업의 철학과 자연을 일종의 ‘예술’로 전환하는 행위인 ‘정원’이라는 의미가 교차하는 개념입니다.

또한 《정원방문기》가 개최된 장소인 스페이스 씨는 건축가 故정기용 선생님께서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 '생명의 숲'이자 '도심 속 정원'과 같은 곳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에 따라 구현된 공간이었기에 전시의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Garden view at space*c


동‧서양을 통틀어 정원은 실재하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주요한 의미를 갖는 모티프로 자리해 왔습니다. 먼저, 서구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정원은 무엇보다 ‘에덴’이라는 주제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정원의 어원이 이를 말해주는데요. 정원(garden) ‘보호하고 막는다’ 라는 뜻의 gan과 ‘즐거움’ 이라는 뜻의 eden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정원은 즐거움이 완벽히 보장되는 이상향을 가리킵니다. 즉,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에덴과도 같은 낙원을 되찾기 위한 시도이며 자연에 행복의 개념을 각인하고자 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원은 이처럼 안전하고 무결한 에덴동산으로서의 의미 뿐만 아니라, 서구의 수많은 미술과 문학 작품의 서사 속에서 ‘욕망과 쾌락의 장소’이자, 고립되고 밀폐된 장소로서 ‘비밀의 정원’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19세기 유럽 미술에서 ‘전원에서의 향연’이라는 주제는 많은 경우 사랑과 밀회(love affair) 같은 에로틱하고 위험한 로맨스와 연관되어왔으며,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 Paradise Lost』이나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모드 Maud』에서도 정원은 관능적이고 위험하며 인간의 마음 속 어두운 곳에 자리하는 것으로 묘사된 바 있습니다.

한편 이와 달리 동양,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정원은 보다 자연 친화적/순응적이며 경계를 지을 수 없는 개방적인 휴식의 장소로서의 의미가 두드러졌습니다. 차경(借景)과 시경(詩景) 개념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먼저 차경은 ‘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자연의 일부를 나만의 정원으로 소유하는 정원 조성의 방식의 대신, 대자연의 풍광 일부를 정원의 일부로 편입시킴으로써 내 시야 속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높은 정자에 올라 굽이치는 산맥을 내려다볼 때, 그 거대한 자연은 ‘심정적인 소유‘로서 나의 정원이 되는 것이죠. 또한 시경은 마치 시를 짓는 것처럼 정원을 조성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시경의 방식에 따라, 소쇄원을 비롯한 한국의 정원들은 단순히 자연물이 이식된 공간을 넘어 화畵, 문文, 악樂, 무舞가 어우러지며 시적 여운이 머무르는 장소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정원을 둘러싼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들을 가로지르는 교차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원 조성의 행위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자연을 잘라내어 임의로 붙이고 꿰매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통제를 시각화하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노스탤지어를 암시하는 표상이라는 점 일겁니다.

이처럼 정원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문화와 자연, 질서와 무질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풍부한 메타포로 기능해왔습니다. 《정원방문기》의 작가들은 이 풍부한 문화적 맥락들을 재료삼아 정원을 다양한 문학적, 미학적 주제들과 연관시키면서 다채롭게 시각화합니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정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일까요 아니면 꿈과 잠재성의 공간일까요?

그럼, 작가들이 가꿔놓은 작품의 정원을 함께 방문해볼까요?



1.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의 공간 혹은 내밀한 비밀의 공간

Lee Chang Won, Fragile Paradise, mixed media installation, 360x300cm,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이창원 작가의 <Fragile Paradise>(2008)는 전시장 벽면에 홍화잎을 촘촘히 쌓아올려 '에덴'의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했던 붉은 홍화잎이 빛에 비춰지면서 하나의 그림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요. 이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가 그린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이미지 입니다. 홍화잎이 만들어낸 에덴동산의 이미지는 정원이라는 것이 에덴동산이라는 천상의 낙원을 갈망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그림자'이듯, 에덴이 표상하는 이상과 실체는 결코 도달할 수도, 완벽히 모방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이미지와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상기할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Ahn Sung Hee, Visiting Gardens_Flower Road, photography, 52x39cm, 2008, 
Courtesy of the artist.

Ahn Sung Hee, Visiting Gardens, mixed media,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안성희 작가의 작품 <정원방문기>(2008)는 도시인들의 개인 정원을 방문하고 정원주인들과 그들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사진, 텍스트, 설치 및 사운드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인터뷰를 통한 정원 주인들과의 물리적인 접촉은 그들의 삶과 감정에 대한 심리적 교감으로 이어지지요. 당뇨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약초를 심은 중국인 아들의 정원, 분홍색 꽃을 좋아하는 루비의 정원, 소나무를 사랑하는 아버지와 딸의 정원 등 안성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정원은 정원 주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삶의 지표'로 드러납니다.



2. 변화와 생성의 열린 공간

Takagi Masakatsu, Bloomy Girls, video installation, 5min. 21sec, still image, 2004, 
Courtesy of the artist.


한편, 오랫동안 자연, 대지는 여성과 연관되어왔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원 역시 그러했습니다. 고대 이래 정원은 봄의 여신 Flora로 의인화되어왔으며, 수많은 성화들에서 성모마리아는 닫힌 정원의 도상으로 표현되어왔습니다. 비디오 영상작가이자 뮤지션인 타카기 마사카츠(Takagi Masakatsu)는 작품 <Bloomy Girls>(2004)에서 여성 이미지를 꽃들이 만개한 화면과 오버랩하거나 교차하는 방식으로 정원, 꽃 같은 자연물과 여성의 관련성을 암시하며, 정원을 유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생성의 공간으로 제시합니다.

Rho Jae Oon, Looking for Carol Anne, single channel video, 4min., 2008,
Courtesy of the artist.

Rho Jae Oon, Looking for Carol Anne, single channel video, 4min.,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노재운 작가는 작품 <캐롤 앤을 찾아서 Looking for Carol Anne>(2008)에서 대중문화나 인터넷 상에서 모은 수많은 이미지 조각들, 숭고한 자연풍경 이미지와 영화 속 여성 이미지를 뒤섞어 하나의 정보 정원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그 자체로 꽃과 나무, 바위와 경물 등 각종 자연 오브제를 이식하고 조합하는 정원술의 과정을 닮아있습니다. 노재운 작가가 만들어낸 이 같은 정보의 접합, 이미지의 충돌과 교차는 마치 자연을 모방한 풍경화를 인공적으로 재모방한 영국식 풍경정원을 연상시키는데요. 이는 원래의 풍경을 낯설게 만들고 재인식하게 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이 원래의 풍경이고 무엇이 모방의 풍경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3.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공간

Moon Kyung Won, Diary, media installation, 3min. 40sec.,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Moon Kyung Won, Now_Recording space*c, media installation,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문경원 작가의 영상 작품 <Diary>(2008)는 자연과 숲에 내재된 신성함, 생멸의 순환이 일어나는 영혼의 쉼터로서의 정원의 면모를 포착하는 영상 작품입니다. 작가는 매순간 창조와 소멸의 순환과정을 묵묵히 겪어내는 나무의 이미지를 이 작품의 주제를 기반으로 작곡된 음악과 함께 한편의 시로 제시하며 '시경'의 개념을 시각화합니다. 이와함께, 작품이 전시된 스페이스 씨 8층에 있는 실제 정원의 실시간 영상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차경'의 개념의 확장을 실험하며 3차원의 풍경을 2차원의 회화로 인식하게 합니다.

Yun Ai Young, Time Garden 3, light installation,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Yun Ai Young, Floating Island, video installation, 2008,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다른 한편, 조명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윤애영 작가의 정원은 빛의 정원입니다. 이 빛의 정원은 비디오 영상과 사운드를 통해 또 다른 시공간의 정원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작품 <시간 정원 3 Time Garden 3>(2008)에서 작가는 꽃과 풀 같은 자연물 대신 수많은 조명에서 나오는 푸른 형광 빛으로 관객의 신체를 에워쌉니다. 이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비일상적인 시공 체험을 유도하는 윤애영의 정원은 관객들로 하여금 꿈과 현실 사이를 끝없이 부유하며 비일상적인 심리적 상태를 경험하게 합니다.

《정원방문기》의 작가들은 인공적인 자연인 정원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명하며, 오늘날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정원의 의미를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담아내었습니다. 《정원방문기》의 '정원'은 이중성을 내포한 모호한 영역으로서에로틱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감춘 비밀스런 영역으로서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무의식을 작동시키는 심리적 영역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시대의 욕망이 이식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작동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기존 세계관의 경계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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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원방문기』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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