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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13 《애니멀리어 Animalier》: 현대미술이 그려낸 동물과 인간의 관계

  • 미술관_학예팀


‘멍집사’, ‘냥집사’란 말 들어보셨나요? 이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는 반려인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인데요. 2017년도의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무려 15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귀여운 동물의 모습을 담은
 ‘동물짤’이나 ‘동물 영상’으로 심신의 평안을 찾는 분들이 많아 이것이 하나의 ‘힐링 장르’가 되어간다고 하는데요. 이쯤 되면 동물은 ‘여전히’ 우리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코리아나미술관의 "전시 히스토리 Revisiting Series" 열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현대미술의 시선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살펴본 전시,
《애니멀리어》를 소개합니다!

Image: Lee Jong-sun, Chapulson Valley, Pakistan, digital pigment print, 90x60 cm, 2007, Courtesy of the artist.

#13
애니멀리어
Animalier
2011. 6. 29. ~ 8. 17.

참여작가
곽수연, 금중기, 김남표,
박종호, 성유진, 송상희,
양승수, 이종선, 임만혁, 정정엽



먼저 전시의 제목인 “애니멀리어 Animalier”란, 19세기 프랑스에서 동물을 주로 다루었던 화가나 조각가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생동감 있는 동물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낭만주의 조각가 앙투안 루이 바리(Antoine Louis Barye)같은 이를 떠올려 볼 수 있지요. 고전적인 미술에서뿐 아니라 동시대 미술에서도 동물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는 '애니멀리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죽은 동물의 사체로 작품을 만드는 영국의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어 “Animal”과 접미사 “-ier”를 결합한 이 용어는 동물-인간 사이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려는 본 전시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Antoine Louis Barye, Lion and Serpent (Lion au Serpent), Bronze, wood base, 22.9 × 34.3 × 17.1 cm, modeled 1832, executed probably 1847 or 184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Tiger shark, glass, steel, 5% formaldehyde solution, 213×518×213 cm, 1991, 개인 소장.

사실 이 전시는 단순히 동물들을 소재로 한 전시 혹은 동물들에 관한 전시가 아니다. 인간들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 혹은 성찰에 관한 전시다.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의 생존조건’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에 관한 전시이며, 그런 까닭에 작금의 우리 현실의 자화상에 관한 담론이 반영된 전시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투명한 자각만이 예술가로서의 존재론적 조건을 견고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이 전시가 가진 중요한 모토일 것이다.

유경희(철학박사, 미술 평론가),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보내는 경의",
『애니멀리어』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1, p. 17.



동물은 역사적으로 인간과 오랫동안 교감해 온 친근한 대상
이지만, 오늘날의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현대문명과 인간의 탐욕으로 고통 받는 희생양이기도 합니다. 《애니멀리어》는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동물과 인간이 맺어온 복잡다단한 관계의 양상을 동시대 시각예술 안에서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던 전시입니다. 전시는 동물이 인간의 삶에서 상징성을 부여받고 관계 맺어온 양상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그럼 함께 《애니멀리어》를 살펴볼까요?


1. 인간의 동반자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대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인간이 동물을 삶의 반려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덤은(Jeremy Bentham)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주장으로 대표되는바,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기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동물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 큰 공을 세웠지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이후 예술가들이 인간이 느끼는 풍부한 감정을 동물에게 투영한 작품을 제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사냥과 승마 그림으로 유명했던 영국의 화가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이지요.

George Stubbs, A Saddled Bay Hunter, oil paint on panel, 552.45x704.85 cm, 1786,
Denver Art Museum 소장.


이러한 흐름의 연장 선상에서 오늘날의 ‘애니멀리어’라고도 할 수 있는 본 전시의 작가들은 여전히 인간의 동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Kim Nam-pyo, Instant Landscape-garden # 7, artificial fur and charcoal on canvas,
193.9x130.3 cm, 2011, Courtesy of the artist.





Kim Nam-pyo, Instant Landscape-circle # 6, artificial fur and charcoal on canvas, di.160 cm, 2011, Courtesy of the artist.


대표적으로, 김남표 작가는 작품 <Instant Landscape>(2011)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유기적인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화면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혼종적인 형상들이 결합되어 구성되는데요, 이들 요소는 서로 대립하거나 긴장을 자아내고 있기 보다는 마치 이미지로 연상하는 끝말잇기처럼 서로의 의미를 확장하고 증폭시키며 다중적인 의미 층을 구성해나갑니다. 가령 인간 문명을 상징하는 구두와 기와는 폭포수로 연결되고, 얼룩말은 언덕으로 화하며, 캔버스에 부착된 털은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인 심상을 유발하지요.


2. 동물을 통한 자아성찰

한편, 인간은 동물을 통해 인간 자신을 성찰하기도 하지요. 
‘애니멀리어’들이 동물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을 그리는 행위는 곧 자기반성과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Park Jong-ho, Children, oil on canvas, 162x130 cm, 2009, Courtesy of the artist.



Park Jong-ho, Children, oil on canvas, 162x130xm, 2009, Courtesy of the artist.


박종호 작가의 작품 속 동물 ‘돼지’가 그 좋은 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예로부터 복과 다산을 상징하는 길조의 동물이었는데요. 작가의 작품에서 돼지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냅니다. 작가는 우연히 방문한 돼지 농장에서 상품으로서 길러지는 무기력한 돼지의 일상을 목격했다고 하는데요, 그 모습에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반복적이고 무료한 삶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돼지라는 도상을 통해 “스스로의 상징체이자 콤플렉스의 총체이며,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에 갇혀있는 대중”의 모습을 은유하며 부정적인 현실을 마주하는 한 개인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Kwak Su-yeon, The Truth About Dog and Cat, color on korean traditional paper, 162x131cm, 2011, Courtesy of the artist.


곽수연 작가는 전통 민화의 화법을 활용하여 유쾌한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곽수연 작가의 작품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2011)에서 "개"는 특히 눈여겨봐야 할 도상입니다. 여기서 개는 작가 자신이자, 인간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거울로서 기능하기 때문이죠. 전통 민화에서 개의 도상은 "충직성"과 "비천함"이라는 상반된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작가는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도상인 개와 그와는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고양이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때로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현대인의 정체성을 의인화 합니다. 또한 애완견은 동시대 소비자본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지요. 작가는 이러한 의미의 중첩과 함께 화려하고 밝은 민화의 조형적 문법을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일면들을 해학적으로 제시합니다.

한편,  우리 전통회화의 동물은 대부분 '알레고리', 즉 우의로서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알레고리란 a를 가지고 b를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옛 동물 그림, 즉 영모화(翎毛畵)는 그림 속 대상들이 갖는 의미가 모여 하나의 뜻을 이루는 '의미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동물 도상은 축원, 교훈, 훈계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요. 가령, 호랑이 도상은 그 힘과 용맹함으로 인해 예로부터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맹호도(猛虎圖), 종이에 먹, 96x55.1cm,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 도구로서의 동물

주지하듯, 인류의 역사에서 동물이 언제나
 ‘친구’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동물은 인간의 이익과 편리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지요. 심지어 동물들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삶의 터전을 잃거나, 경제적 이유에서 ‘살처분’을 당하기도 합니다.  



Geum Joong-ki, exposure of the sense, painting on F.R.P, 120x114x72 cm, 2011,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금중기 작가는 이처럼 인간화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장소를 잃어가는 동물들을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직면한 자연의 위기를 경고합니다. 그는 작품 <감각의 노출>(2011)시리즈 에서 인간의 머리를 관통한 사슴이나 인간의 머리 위를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을 통해 치유될 수 없는 동물들의 상처와 분노, 그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가시화합니다.



Yang Seung-soo, Treadmil, single channel video, 06 min. 34 sec., 2010,
Courtesy of the artist.


또한, 양승수 작가는 작품 <Treadmil>(2010)에서 투견 경기를 위해 훈련 받는 개의 모습을 영상으로 포착합니다. 이 작품은 '투견은 자신의 순수한 본능으로 싸우는 것'이라는 투견 옹호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인데요. 작품 속 러닝 머신 위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개는 결국 침을 흘리며 쓰러져버립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위해 잔인하게 희생되는 동물들의 현주소를 폭로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다른 생명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현대인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을 수행합니다.


4. 반인반수, 경계적 존재

반은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반은 동물의 모습을 지닌
 ‘반인반수’(半人半獸)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의 많은 신화적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오늘날의 ‘하이브리드’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반인반수는 인어와 같이 초자연적인 신비를 증언하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생명체로, 혹은 켄타우로스처럼 그 엄청난 괴력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져 왔습니다. 많은 예술작품 속에서 반인반수는 단순히 과거의 신화적 형상을 넘어, 미와 추, 혹은 인간의 존재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들을 숙고하게 하는 ‘경계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Sung Yu-jun, Untitled, conte on daimaru, 162.2x130.3 cm, 2010, Courtesy of the artist.



가령 성유진 작가의 회화 <Untitled>(2010-2011) 시리즈에는 인간의 몸에 고양이의 몸을 가진 ‘반인반묘’(伴人伴猫)가 등장합니다. 동화 같은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이 ‘인간화된 고양이’가 가진 커다랗고 공허한 눈망울은 왠지 우리로 하여금 불안과 초조함, 혹은 멜랑콜리를 느끼게 하는데요. 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작가가 느꼈던 자전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경계에서 방황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근원적인 불안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전시 《애니멀리어》는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동물이 지닌 기존의 상징성을 갱신하는 동시에 여기에 새로운 관념을 부여하고, 현대 문명이 초래한 환경위기 속에서 동물과 인간이 맺어 관계의 양상을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냄으로써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로서 동물에 대한 대안적 시선을 관객에게 제안해보고자 했던 전시였습니다. 결국, 《애니멀리어》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라는 주제를 통해 환경위기가 도래한 오늘날에 대한 숙고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으로 대변되는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인 성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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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애니멀리어』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1.


*본 시리즈는 코리아나미술관 네이버 블로그와 포스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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