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히스토리 #14 《예술가의 신체 Artist’s Body》: 다중의 신체들로 ‘다시 쓰기’
#14
예술가의 신체
Artist’s Body
2010. 05. 06. - 06. 30.
참여작가
마르쿠스 한센, 니키 리, 이재이, 마커스 코츠,
이윰, 고승욱, 김미루, 안강현, 마카일 카리키스,
피피로티 리스트, 줄리 자프레노, 스텔락, 이형구,
장지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재닌 안토니
안녕하세요. 코리아나미술관입니다 :)
코리아나미술관은 2003년 개관 이래로 #신체 #여성 #화장 등의 주제로 심도있는 기획전시를 통해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축해왔습니다. 또한 미술뿐만 아니라 인접한 타 장르와의 연계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여 큐레토리얼의 실천 영역을 확대해 오고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전시는 현대미술에서 주요한 논제로 자리잡고 있는 '신체' 입니다. 또한 신체는 코리아나미술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주 주제이기도 합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Shall We Smell?》(2007), 《ULTRA SKIN》(2009), 《Show Me Your Hair》(2011), 《Code Act》(2014), 《Dancing Mama》(2015), 《THE VOICE》(2017), 《아무튼, 젊음》(2019) 등 '신체'라는 주제를 확장하며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지난 전시들을 되짚어 보는
전시 히스토리 시리즈!
열네 번째 순서는 당시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아브라모비치, 재닌 안토니 등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예술가의 신체 Artist’s Body》(2010) 입니다.
예술가의 신체
신체는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고정적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데카르트에 의해 몸과 정신으로 이분화된 도식에서 신체는 정신의 하부구조이며 영혼과 이성을 담는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신체는 그저 응시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며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소외되었는데요, 이러한 고전적인 신체의 배치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신체를 이성중심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신체에 대한 재-사유를 통해 새로운 주체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예술가의 신체는 사유하는 주체에서 체험하고 공유되는 주체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예술가 신체”는 20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에서 화두가 되는 주제입니다. 예술가의 몸을 중심으로 행해진 신체 미술(Body Art)은 퍼포먼스를 통해 일상과 몸을 예술로 제시하거나, 신체 외모를 변형시켜 정체성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신체를 훼손하고 상처를 입히는 극단적인 행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예술가의 신체 작업들은 인간의 이성과 정신에 대항하여 신체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각인시켰을 뿐 아니라, 신체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성과 인종, 계급 등의 사회적 의미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Artist’s Body》는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몸”, “이질적인 몸”, “몸으로 사유하기”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됩니다. 먼저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몸’에서는 세상으로 스며들어가 타인과 사회에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신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몸’에서는 성과 계급, 인종 등의 사회적 의미들이 교차하는 신체의 모습을, ‘몸으로 사유하기’에서는 사유와 명상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어떤 다양한 몸의 언어들로 어떻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작품들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관점을 읽어갈 수 있을까요? 《Artist’s Body》 시작합니다!
1. 타인과 세상과 소통하는 신체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신체”에서는 자신의 신체가 타인과 사회와 소통함으로써 여러 의미들을 생산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 및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었습니다. 타인과 세상과 소통하는 몸으로서의 예술가의 신체는 자신의 완전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소멸시키고 내 안에 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한센(Markus Hansen)은 나와 타자의 신체가 어떻게 소통하고 전이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비디오 영상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에서 작가는 다양한 성과 인종의 타인들을 선택하고 작가 자신의 신체와 병렬 시키고 있는데요, 외모를 넘어서는 타인과의 감정적 소통을 통해 타인의 내적 이미지와 감정들을 재상연합니다. 이러한 감정 이입의 상황을 통해 그는 타인의 감정적 상태에 더 근접하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니키 리(Nikki S. Lee)의 <프로젝트> 시리즈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그들과 동화하는 과정을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작가는 이질적인 문화들이 교차하는 다문화 커뮤니티에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컨데 작가는 히피, 히스패닉, 펑크족, 레즈비언, 오하이오의 트레일러 파크 거주민 등 특정 지역의 커뮤니티를 찾아가 수개월 동안 그 집단 구성원들의 복장, 피부색, 행동 양식 등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들과 어울리며 신체적으로 동화되는 내면화 과정을 경험합니다. 니키 리의 <프로젝트> 사진 시리즈는 그 집단 속에 완전히 융화된 후 찍은 결과물로, 내가 아닌 타인 되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리움미술관의 재개관을 기념하여 열린 《인간 일곱 개의 질문》(2021) 전시에서도 니키 리의 <프로젝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 이질적인 몸
두 번째, ‘이질적인 몸’에서는 일반적인 언어 체계 내에서 쉽게 수용되지 않는, 일종의 비정상적인 신체를 보여줍니다. 객관적이고 규범화된 남성적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는 여성의 신체, 신체를 변형하거나 학대하여 신체의 정상성을 공격하는 이미지 등을 통해 정상적인 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안정적이고 통일된 인간이 아닌 불안정한 인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카일 카리키스(Mikhail Karikis)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청각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특히 조각적 재료로서의 목소리나 사회, 정치적 매개체로서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퍼포먼스와 영상, 사운드 등의 매체를 통해 소통의 불가능성, 불화와 탈구의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카리키스는 인간의 음역을 벗어나는 이질적인 소리와 찌푸리기 등의 행위를 통해 신체를 공격하고 재인식시키는 보이스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왜곡되고 비틀어진 보이스는 극적인 코미디와 같은 과장된 퍼포먼스와 결합되어 해방되고 비관습적인 인간 주체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작품은 코리아나미술관이 기획한 또 다른 전시 《더 보이스》(2017)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답니다. 미카일 카라키스의 다른 작품들은 글 하단의 링크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어요.
미카일 카리키스의 작품
Mikhail Karikis 'Promise me' - voice sculpture/performance video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는 먹거나 청소, 목욕 등의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페미니즘 담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러빙 케어>에서 작가는 염색약에 머리카락을 담그고 머리를 붓처럼 사용하여 전시장 바닥을 머리카락으로 칠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안토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바닥을 청소하는 것은 사회가 구성한 여성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러빙 케어’ 라는 제목은 퍼포먼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염색약 제품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통적인 여성 노동에 대해 보여줍니다. 여기서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시선에 대상이 되는 섹슈얼리티적 신체를 거부하고 여성의 노동으로 분류되는 청소를 행하는 물질적인 신체, 여성 주체로서의 신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3. 몸으로 사유하기
“우리가 정신이나 영혼이라 부르는 것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개념은 결국 신체적일 수밖에 없으며 결코 몸에 괴리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배제된 정신이란 치명적인 추상성에 다름 아니며 몸은 더 이상 영혼의 감옥이거나 영혼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의 숙명이라 말할 수 있다.”
- 정화열,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 아카넷, 2005.
‘몸으로 사유하기’에서는 신체를 통해 감각적인 충격을 전달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질과 인생에 대해 사유하게 하고 명상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 미술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누드와 해골>에서 우리는 ‘몸으로 사유하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골을 몸 위에 무겁게 얹은 채 바닥에서 숨 쉬고 있는 아브라모비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흡이 점점 커지고 증폭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신체와 해골을 대면시켜 삶과 죽음, 일시성과 영원함을 동시에 사유하게 하고, 우리가 장차 마주할 죽음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도구이자 매체로 사용하는 작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행위예술가입니다. 당시 코리아나미술관의 《Artist’s Body》와 비슷한 시기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렸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는 전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브라모비치 2010 MoMA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
아브라모비치 작가 웹사이트
이처럼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신체’는 단순히 물질적 차원의 신체가 아닌, 정치적인 장소로서 표현되며 그러는 한에서 미학적 함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Artist’s Body》에서 보여주는 신체는 나와 타인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성과 인종과 계급의 문제 등의 현실적인 이슈가 생산되는 곳이며, 합리적 이성에 대항하여 불안정함과 이질성을 내재한 공간, 또는 죽음 및 삶과 관련하여 명상과 사유를 일어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Artist’s Body》는 몸과 둘러싼 다양한 표현 언어들을 통해 우리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시선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Artist’s Body》 이후,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예술가들의 몸짓이 일종의 ‘대안적이고 저항적인 역사 쓰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역사를 몸으로 쓰다》라는 전시가 열렸었는데요. 함께 살펴보시면 그 흐름을 읽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 소개드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사를 몸으로 쓰다》 (2017)
2022년 다시 만난 전시 히스토리 흥미로우셨나요?
다음 편에서는 이번 편에 이어 신체의 감각에 대해 다루었던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전을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부탁드려요 :)
글 작성 및 정리_ 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 정민경
©코리아나미술관, 202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고문헌 및 링크
『Artist’s Body 예술가의 신체』 전시 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0.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전시 도록, 리움미술관, 2021.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 정화열, 아카넷, 2005.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가 참고 사이트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weq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