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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18 《Show Me Your Hair》: 머리카락, 익숙하지만 낯선

  • 미술관 학예팀



#18

쇼미 유어 헤어

Show Me Your Hair

2011. 10. 6.-11. 30.


참여작가

이세경, 이순종, 윤자영, 함연주, 임소윤, 루스 마튼, 크리스틀 레이케부어, 

헤린더 코엘블, 아드리안 파이퍼, 캐롤 킴, 오릿 애셔리, 레지나 호세 갈린도, 

미카 로텐버그, 앤 윌슨, 임하타이 수와타나실프




“주제의 귀환” - 2011년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두 전시 《쇼미 유어 헤어 Show Me Your Hair》와 《시티 위딘 더 시티 City within the City》를 다룬 비평문의 제목입니다. (강수미, “주제의 귀환”, 「Art in Culture」, 2011년 12월.) 필자는 두 전시를 현대 미술계가 부지불식간 방치해둔 과제를 깨우는 기획으로 평가합니다. 그 과제는 머리카락처럼 소소하고 평범한 것에서부터 존재론적 의미와 감각적 지각을 발견해 내는 것으로, 감상자로 하여금 전시의 주제에서 파생된 예상 밖의 인식과 감각의 산물을 얻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술에서 일상 속 대상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드는 기획이 있다면 그 대상은 주로 미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계 맺어온 ‘눈’, ‘피부’, ‘손’과 같은 신체나, 빛, 종이, 색 등의 오브제였지요.


임소윤, Dreamtime, Taneisha, acrylic on paper, 76.5x56cm, 2009.


반면 머리카락을 주제로 한 전시는 지금도 국내외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서 생소할지 모르는 이 기획은, 코리아나미술관이 개관이래 화장, 여성, 신체 등을 둘러싼 코드를 동시대 미술의 이론과 실천에 접목해온 맥락 속에 위치해있습니다. 때문에, 특별히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선보일 수 있었던 기획이라고 여겨집니다.


《Show Me Your Hair》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전시의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머리카락을 단순히 소재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다루기보단 그것이 담지한 의미를 탐구하고 미술사와 미학을 가로지르는 담화를 통해 풍부한 접근을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품을 통해 감상자는 아름다움과 낯선 두려움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에서부터, 사회적 정체성과 저항적 몸짓까지 머리카락이 표상하는 넓은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Show Me Your Hair》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2011.




그럼 이제 열여덟 번째 전시 히스토리와 함께 

《Show Me Your Hair》를 더 자세히 자세히 살펴볼까요?


Image: 루스 마튼, Paris, digital print after an altered 18c copper engraving, 104x90cm, 2008.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머리카락 상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지고 태어나는 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수 십 번 그 형태를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팔이나 다리처럼 신체 내부로부터 요구하는 움직임을 만들어 위치를 이동하거나 형태를 변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 몸에 붙은 신체의 연장선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손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외부로부터 변형을 가해야 하는 것이죠.


이처럼 머리카락은 신체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 나오며,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있기도 한 양가성을 지닙니다. 또한 무엇과도 유사하지 않으면서 무엇으로도 변질될 수 있는 비선형적이고 불명확한 특성을 가지지요. 이는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의미화한 ‘비정형(formless)의 상태로도 볼 수 있는데요. 머리카락의 변형은 자신의 고유한 자아를 이탈하여 견고한 주체를 소멸시키고 의미와 형태를 해체시킬 수 있는 ‘부정’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의 예상치 못한 변형과 장소 이탈은 불현듯 기괴함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주체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은 무의식적 불안을 야기하며 비천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이러한 지점에서 머리카락은 포스트 모던 미학의 논제와 함께 다뤄질 수 있는 매체로 여겨져 신체 미술, 페미니즘, 퍼포먼스 등 여러 실천의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에 담긴 특수성이 미학적 측면에서 오늘날의 시류와 맞닿아 있다면, 시대에 따라 새겨진 의미는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동인이 되었고, 이는 미술사 속에서 발견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엄격한 종교적 규제 하에 머리카락을 겉으로 내보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들은 대부분 머리카락을 천으로 가리워져 거의 볼 수 없었지요. 르네상스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규율과 관습으로부터 해방되며 머리카락을 드러내 여성성을 표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자랑하듯 내보이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 Medusa,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60x55cm, 1597. 출처: Uffizi, Florence.


카라바지오의 <메두사>는 강렬한 명암 대비로부터 삶과 죽음의 강렬한 대조와 함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처럼, 머리카락은 힘의 상징이 되기도 했는데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졌던 메두사는 부정을 저질러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고, 메두사 모티프에서 머리카락은 ‘저주이자 힘’을 상징하게 됩니다.


메두사가 부정의 결과로 신의 저주에서 비롯된 위협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면, 삼손은 부정의 결과로 머리카락이 잘리며 신의 가호를 상징하는 힘을 잃게 됩니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는 서양 미술사에서 루벤스, 만테냐, 램브란트 등 여러 작가들에게서 주제로 다뤄졌답니다.


이 밖에도 뒤샹, 만레이, 마그리트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서도, 그리고 성과 인종의 정체성을 와해하고 해체를 수행하는 수단으로써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다뤄져 오고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머리카락을 둘러싼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은 것 같지요?


《Show Me Your Hair》에서는 1. 변형된 머리카락, 낯섦의 미학 2. 자아의 변형 – 외모와 정체성 3. 삶과 죽음의 메타포이렇게 세 가지의 소주제로 나누어 총 15인의 참여작가들이 탐구한 주제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 변형된 머리카락, 낯섦의 미학


변화는 대상을 낯설게 만듭니다. 그 낯선 감정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요. 반면, 낯선 감정이 두려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머리카락은 언제나 변화 가능한 특성을 지니기에 단순한 변형으로는 큰 이질감이나 낯선 감각을 발생시키진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특별한 변형이 없이도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기존의 위치를 벗어날 때 그것은 낯설고 두려운 감각을 자아냅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의 낯섦과는 다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프로이트는 언캐니(Uncanny) 또는 운하임리히(Unheimliche)- ‘두려운 낯섦’의 동인을 설명합니다. 운하임리히의 반대말인 하임리히(Heimliche)는 ‘집과 같은’, ‘고향 같은’, ‘친숙한’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운 낯섦이란 감정은 단순히 친숙한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낯선 곳에 위치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감정은 아니라고 말하는데요.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이 회귀할 때, 그리고 초극된 원시적 믿음이 확인될 때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잘린 신체로서의 머리카락은 어린 시절 거세 불안을 회귀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션(abjection)’ 개념에서는, 본래 제거되고 이탈되는 순간 버려지고 삭제되어야 할 비천한 존재가 다시 귀환하여 낯선 상태로 드러나 그로테스크한 공포감을 야기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스 마튼Hirsute, digital print after an altered 18c copper engraving, 104x68cm, 2009.


이 작품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루스 마튼(Ruth Marten)의 <털복숭이 Hirsute>입니다.


초상화 속의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고 두려운 감각을 자아냅니다. 인간 신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얼굴 전체를 감싼 털은 귓바퀴마저도 뒤덮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털은 빗어 내린 듯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마치 초상화 모델을 위해 단장한 신사처럼요. 그러나 남자의 머리카락은 기존에 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하여 다른 피부에까지 배치되며 생경함과 함께 알 수 없는 기시감을 형성합니다.


이처럼, 친숙한 대상의 미묘한 변형은 우리에게 얼마간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무채색의 그림 속에서 푸른빛의 형형한 눈동자는 마치 살아 움직일 듯 감상자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언캐니한 감정이 발생되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초극된 원시적 믿음이 확인될 때를 말했지요. 이 작품에서 감상자는 털 덮인 얼굴 속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눈을 마주하며, 인간이기도, 아니기도 한 원시적이고도 마술적인 대상을 떠올리며 기이하고도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루스 마튼, 헤린더 코엘블 《쇼미 유어 헤어》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마튼의 작품 옆으로 보이는 모니터에서는 독일의 사진작가 헤린더 코엘블(Herlinde Koelbl)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헤어 Hair> 연작 가운데 50여 점이 선별되어 스크린을 통해 송출됩니다. 작품은 6년간 인간 ‘헤어 hair’에 대한 연구로 진행되었으며, 나이와 인종, 성과 민족을 넘나들며 포착한 머리카락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헤린더 코엘블, Hair, digital presentation from photographs, 2011. 작품 일부


작가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머리카락의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하였습니다. 얼굴이 놓여야 할 자리에 머리카락을 감싼 이미지, 온몸을 덮을 만큼 긴 머리카락을 덮고 있는 여성, 미처 다 썩지 못한 해골의 머리카락 등 다양한 머리카락의 특성은 얼굴만큼이나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소재로 보입니다.


몸통 좌우를 감싼 긴 머리카락을 클로즈업 한 사진에서는, 마치 몸통의 요소들이 이목구비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만큼 머리카락은 얼굴의 구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마튼의 작품에서는 낯섦과 두려움이 공존하였다면, 코엘블의 작품은 각도를 비틀거나 초점을 달리하여 머리카락을 포착함으로써 색다른 감정을 자아냅니다. 이는 감상자로 하여금 머리카락이 아닌 새로운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데요. 이를 통해 그 속에서 간과하였던 머리카락의 다양한 감각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연작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Herlinde Koelbl (링크)


헤린더 코엘블, Hair, digital presentation from photographs, 2011.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 사진은 코엘블의 <Hair> 연작 중 하나입니다. 일상 속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이 익숙한 장면에서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느껴지시나요?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고 죽은 것으로 인식되어 더럽고 불쾌하게 여겨지며 때론 소름 끼치는 감각을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식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얼른 치워버려야 할 불쾌한 존재이기도 하지요.

이세경, Show Me Your Hair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이세경은 신체에서 이탈한 머리카락을 다른 장소에 정교하게 붙여내면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작품은 머리카락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하고 아름답게 제작되었습니다. 마치 박물관에서 볼법한 유물처럼 진열되어 머리카락의 혐오적 속성은 극단적 장식성으로 변이됩니다.


장식적 요소로 승화된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기존의 죽은 머리카락에 대한 감상자의 경험이 충돌하며 아이러니한 감정을 야기합니다. 이는 심리적 부조화와 혼동을 발생시키기도 하지요. 작가는 머리카락의 재배치를 통해 아름다움에서 불쾌함으로 옮겨가는 의식의 변화와, 그 사이에서 혼동하는 감상자의 반응을 의도하였습니다.


이세경, Fiesentableau, dyed humand hair glued on shite tiles, 31x31cm, 2007.


함연주, 올 All, artist's hair, epoxy resin, 800x150cm, 2010.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2층 8미터 높이의 전시장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함연주의 <All>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미줄처럼 엮어 낸 설치 작품입니다. 8미터가 넘는 길이로 정교하게 짜낸 작업은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과 작가의 신체가 끊임없이 만나고 접촉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일종의 분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투명한 그물망처럼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려진 작품은 공간을 점유하지만 분리시키지 않고, 작품 너머의 공간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감상자의 시선은 거미줄에 걸리듯 작품에 고정되기도 하고, 또 그 사이를 가로질러 작품 너머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는 앞뒤의 공간을 작품과 함께 동시에 지각하게 만들어 작품 이미지에 대한 불명료함을 강화합니다.


머리카락 위의 투명한 FRP용액은 마치 빗방울을 머금은 거미줄처럼 빛을 머금고 반사하여 감각적인 공간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신체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에 대한 죽은 감각, 낯섦, 불쾌함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상쇄되고, 직조하듯 짜내려간 작품에서 숭고한 수행의 미를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머리카락의 이탈, 변형, 재생산이 야기하는 정신분석적이고 감각적인 측면 통해 인간 주체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주는 작품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으로는 머리카락에 내포된 정체성과 2000년대 이후 글로벌리즘과 민족주의 등 현대미술의 주요 이슈들이 만나는 지점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 자아의 변형 - 외모와 정체성


머리카락은 그 길고 짧음으로 성(性)을, 색과 형태로 인종을 구분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리즘과 민족주의가 양립하는 담론의 흐름 속에서, 그 이념에 따라 성과 인종을 구분하고 와해하기도하는 중요한 소재로서 기능하기도 했지요.


최근에는 유전학적인 성과 인종을 떠나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자신의 발언을 체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범주화된 구분을 벗어나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나아가 변장과 변형 또는 제거를 통해 세계에 저항하고 문제를 가시화하는 발언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머리카락은 정체성과 관련된 광범위한 논의들과 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릿 애셔리Hairoism, 4digital prints 50.5x42cm, 4 posters 50.5x71.5cm, 2009-2011.


1960년대 이후 신체 미술에서 인간의 몸은 문화와 역사의 구조를 육화하고 권력의 그물망이 새겨지는 장소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신체의 귀속과 통제는 사회의 통제로도 여겨질 수 있는데 예술가들은 이에 저항하는 몸짓으로, 또는 자신과 타자, 사회와의 상호 관계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신체 변장과 변형을 시도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은 적극적인 신체 변형에 유용한 매체였지요.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오릿 애셔리(Oreet Ashery)는 불안한 성 정체성과 유대인이라는 민족성을 교차시키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작가는 <헤로이즘 Hairoism>(2009-2011)에서 헤어스타일을 변형하고 수염을 부착하여 당시 사회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남성으로 변장합니다. 6시간 동안 지속된 퍼포먼스에서 5명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고위 간부이자 군인을 상징하는 형상이 순차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변장 모티프_ 모세 다얀(Moshe Dayan), 모사 모하메드 아부 마르주크(Mousa Mohammed Abu Marzouk), 아비도르 리베르만(Avidor Lieberman), 야사 아라파트(Yassar Arafat), 그리고 아라파트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가진 링고 스타(Ringo Srarr)


오릿 애셔리, Show Me Your Hair》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이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클로드 카엥(Claude Cahun)의 변장을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카엥이 전통적 여성성에 대한 저항의 표출로 변장을 시도했다면, 애셔리는 자신의 민족적 토대에서 출발한 정치적 이슈를 담은 페르소나를 연출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사이의 사회적 이슈를 가시화함과 동시에 전쟁과 군대를 둘러싼 남성 권력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레지나 호세 갈린도, Piel, performance video, 14min 45sec, 2001. 스틸컷.

몸의 털을 깎는 행위는 여러 문화권을 아울러 소리 없는 저항 행위로 여겨집니다. 레지나 호세 갈린도(Regina José Galindo)는 <피부 Piel>에서 온몸의 털을 깎고 베니스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고통과 폭력에 항거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합니다.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는 부패와 살인, 불평등과 학대, 기아와 자연재해,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룩진 모국 사회에 대한 투쟁의지를 몸을 통해 선보입니다.


갈린도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누가 그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Who can erase the traces?>(2003)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갈린도가 피 묻은 발자국을 거리에 남기는 작업을 수행했다면, 그 이전작인 <피부>에서는 자신의 몸에 난 털을 모두 제거합니다. 그녀가 걸어간 장소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의 흔적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곧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작가의 지향을 향한 투쟁적 몸짓을 극대화합니다.


미카 로텐버그, Cheese,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16min 5sec, 2008.


앞의 두 작품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을 변형하거나 삭제함으로써 저항과 비판을 시도했다면, 미카 로텐버그(Mika Rottenberg)는 머리카락을 통해 여성성을 탐구합니다.


일곱 서덜랜드 자매(Seven Sutherland Sisters)는 아주 길고 아름다운 모발을 가진 가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풍성한 머리를 관리하는 제품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게 되었는데요. 로텐버그는 자신의 신체로 상품을 광고하는 이들 자매의 실화와 라푼젤의 이야기를 결합하여 기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제작합니다.


<치즈 Cheese>에서 여성들의 긴 머리카락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동물을 우리로 유인하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우유에 담가 기적 같은 치료제가 되는 치즈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과거 여성성을 상징하던 긴 머리카락은 주로 여성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기제였지요. 반면, 로텐버그는 일과 노동의 현장에서 머리카락을 드러내며 신체로부터 무언가 양육하고 자라나게 하는 여성의 능력을 표상합니다. 이는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었던 ‘어머니 대지(Mother Nature)’즉 가이아를 은유하며 훼손되고 착취당한 여성의 신체를 해방하고 자연을 다스리고 생산해 내는 조화로운 신체로 복권시킵니다. 이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성을 재발견하고자 시도하는 에코 페미니즘의 전략으로도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3. 삶과 죽음의 메타포


대지에서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고 꺼지는 것처럼, 우리 신체에서 뻗어 나오는 머리카락은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변화하거나 상실되기도 합니다. 반면, 헤린더 코엘블의 <Hair> 연작 중 해골에 남은 머리카락처럼 사후에도 오랜 시간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기도 하지요. 우리 삶의 미묘한 경계에 놓인 머리카락의 생성과 상실은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쉽게 기르고 잘라내기도 하지요. 그런데 때로 머리카락의 상실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나 감정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앤 윌슨, Show Me Your Hair》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앤 윌슨(Anne Wilson)은 머리카락을 시간의 지속과 상실을 둘러싼 이야기가 녹아든 장소로 여깁니다. <헤어 탐구 Hair Inquiry>는 ‘만약 머리카락을 잃게 된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수집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머리카락의 ‘상실’에 관한 내러티브를 읽어냅니다.


앤 윌슨, Hair Inquiry, audience participation images & text,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2011. 작품 중 일부.


“나의 첫 반응은 머리를 삭발했을 때의 느낌과 연관이 있다. 나는 자유와 통증을 함께 느낀다. 그러나 이 느낌은 이전보다 가볍다. 이는 거울을 마주할 때 느끼는 고민이다. 나의 새로운 외모와 대면할 때 고독을 느낀다. 이는 동성애의 사회적 지표이다.”


- <헤어 탐구 Hair Inquiry> 중 일부 발췌


<헤어 탐구 Hair Inquiry>의 한 참여자는 머리카락의 상실에서 한편으로 자유를 경험합니다. 이처럼 머리카락의 상실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시작, 자유의 메타포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마치, 노화와 함께 머리가 빠져갈 때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코엘블의 사진과 같이 사후에도 썩지 않고 여전히 해골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의 흔적을 볼 때 질긴 생명력이 떠오르기도 한 것처럼 말이죠. 


유교적 전통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머리카락을 신체의 일부로 여기고 효(孝)의 실천으로 소중히 다루어 왔지요.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거의 효용 되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머리카락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그리고 어떤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나요?






어쩌면 가볍게 지나칠지 모르는 대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속성, 미술 속에서 표상된 여러 이미지들과 함께 들어다보며 색다른 감각들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 거울 속, 머리카락을 볼 때 조금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요?



김가람, the AGENDA hair salon, 헤어커트 퍼포먼스 & 혼합재료, 가변 설치, 2016.


코리아나미술관의 《Show Me Your Hair 전시 이후, 동시대 미술에서 '헤어(hair)'란 주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요? 주제와 연관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소개해드리면서 오늘의 전시 히스토리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동시대 사회문화적 이슈를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서 다루고 있는 김가람 작가는 2014년부터 진행 중인 <아젠다 헤어 살롱 the AGENDA hair salon>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와 머리 자르기를 연결 짓습니다. 작가는 머리를 자르는 행위가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내보이는 사회 문화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갈린도의 작업에서처럼, 대중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일종의 저항성을 내포한 행위이기도 하지요.


<아젠다 헤어살롱>의 참여자는 시의성과 장소성이 고려된 특정한 문구가 새겨진 헤어 가운을 선택하고 '머리를 자르는 행위'와 함께 정치적 제스처를 부여받습니다. 이어서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작가와 함께 그와 관련된 담화를 자연스럽게 진행하게 됩니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와 함께 진행된 가볍고도 자유로운 담화를 '전시'와 '예술'이라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 가시화함으로써 다소 무거운 이슈들을 위트 있고 유머럽게 논의 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퍼포먼스는 2014년 인천의 '수봉 다방'에서 처음 소개된 후, 국내외 여러 장소에서 전시의 형태로 선보였습니다. 아래 영상은 독일의 갤러리, 교통 중심지 등 6개의 장소에서 '난민 수용 문제', '브뤼셀 테러', '아트 이슈' 등의 주제로 진행된 퍼포먼스입니다.



김가람 작가는 정치, 사회적 이슈를 예술을 통해서 드러내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열린 코리아나미술관의 두 전시에도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데요. 《더 보이스 The Voice》(2017)에서는 포털뉴스의 댓글로 만든 음원을 유통하는 가상 걸그룹 <4ROSE>(2014-) 프로젝트를, 이후 《아무튼, 젊음》(2019)에서는 한국의 문맥에서 젊음이 의미하는 바를 롤러장을 통해 표현한 관람객 참여 퍼포먼스 <언발란스>(2019)를 선보였답니다.


지금까지 열여덟 번째 전시 히스토리와 함께 《Show Me Your Hair》를 살펴보았습니다. 머리카락에 담긴 다양한 코드들, 흥미로우셨나요? 다음 전시 히스토리에서는 화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과 의미를 조망한 전시인 《코스모 코스메틱 Cosmo Cosmetic》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글 작성 및 정리_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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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강수미, “주제의 귀환”, 「Art in Culture」, 2011년 12월. P. 72

김원방, “현대미술에 있어 체모(體毛)의 의미: 초현실주의에서 몸정치학에 이르기까지”, 『Show Me Your Hair』 전시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1, pp. 18-21.

배명지, “Show Me Your Hair”, 『Show Me Your Hair』 전시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1, pp. 6-11.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역, 파주:열린책들, 2020, pp.419-470

서정준, "[오늘의 미술, 7.6] '아젠다 헤어 살롱: 김가람 개인전'", 문화뉴스, 2016.07.06.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81 (2022.5.24. 접속)

앨리스온, "익숙한 이미지로 낯선 질문을 던지다 : 김가람 _interview", 익숙한 이미지로 낯선 질문을 던지다 : 김가람 _interview (tistory.com) (2022.5.24. 접속)

Herlinde Koelbl 웹사이트https://www.herlindekoelbl.com/books.php?id=9 (2022.5.19. 접속)

"Regina José Galindo", Guggenheim 웹사이트, https://www.guggenheim.org/artwork/artist/regina-jose-galindo (2022.5.19. 접속)



이미지 출처

Oreet Ashery 웹사이트, http://oreetashery.net/site/work/hairoism/ (2022.5.19. 접속)

김가람 웹사이트, http://www.garamkim.com/portfolio/ (2022.5.24.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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