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히스토리 #19 《Cosmo Cosmetic》: 우주의 질서, 화장
#19
코스모 코스메틱
Cosmo Cosmetic
2005. 8. 18 – 10. 29
참여작가
김지현, 김두진, 김자혁, 임민욱, 고낙범, 손정은, 김준, 박미나,
아나 라우라 알라에즈
전세계적으로 K-pop과 K-drama의 인기가 증가하면서 K-Beauty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현지에서도 국내 화장품의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면서 색조 화장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어요.
K-Beauty 란 단순히 치장이라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한국의 문화를 담고 있습니다. 화장에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같은 다양한 맥락들이 담겨 있는데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화장은 치장뿐만 아니라 주술과 치료의 목적을 가지거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오늘날의 화장은 성역할의 구분 없이 나 자신을 꾸미거나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되는 새로운 표현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흔히 몸을 치장하거나 단장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헤어'와 '화장'이라고들 하죠? 지난 전시 히스토리에서는 ‘헤어’와 머리카락을 다루고 있는 «Show Me Your Hair»를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헤어’에 이어 ‘화장’과 관련된 전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코리아나 화장품이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화장품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어요. ㈜코리아나 화장품은 코리아나미술관과 함께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을 운영하여 자연에서 얻은 천연재료로 만든 화장재료, 통일 신라 시대부터 근대까지 사용했던 다양한 화장용기, 화장도구, 화장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국내 유일의 화장박물관으로서 한국의 전통 화장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 화장의 역사와 흐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화장(술)은 영어로 코스메틱cosmetic이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는 세계 우주의 의미를 지닌 코스모스cosmos를 어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코스모스cosmos는 희랍어 코스메티코스Kosmeticos, 즉 '우주의 질서'를 어원으로 합니다. 어원으로 접근하자면, 화장에는 세계와 우주의 질서 및 순환 체계라는 ‘코스모스’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장cosmetic에는 우주의 질서cosmos와도 같은 조화로움이 담겨 있는 것일텐데요?
오늘 살펴볼 "전시 히스토리" 열아홉 번째 전시는 이런 조화로움을 신체에 부여하는 수단으로서의 화장에서부터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세계의 순환과 질서 내에서 기능하고 작동하는 화장의 의미작용까지, 화장의 다양한 지형도를 보여주었던 «Cosmo Cosmetic»(2005)입니다.
"이번 «코스모 코스메틱»전은 미술이라는 시각적 특성을 살리면서 작가의 사회적이며 개인적 개념, 철학들이 잘 드러난 감각적 전시라고 볼 수 있다. 공간 전체를 다이내믹하게 연출하며 작가의 작업을 돋보이게 하는 큐레이팅과 충실하게 주제를 해석하는 작가정신이 모두 돋보인 오랜만에 보게 되는 기분 좋은 전시였다."
-김미진(홍익대 교수), 「화장에 관한 예술적 시각」, 『아트인컬쳐』, 2005년 9월호, 143.
"«Cosmo Cosmetic» 전이 추구하는 ‘화장’의 무한 항해는 어느 한 곳에 정박하기를 거부한 채 계속해서 개별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진행되었다. ‘화장’에 입힌 단일 개념의 외피를 벗겨 내고 이에 대한 해석의 폭과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작가들은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화장’을 다루었다. 말하자면 Cosmo와 Cosmetic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경계를 건드리고 있는데, 바로 이 ‘구분’, ‘경계’를 지적하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점이라 하겠다."
- 김형미(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리뷰 「‘화장’이 갇힌 틀의 확장과 의미의 무한 재배치」, 『월간미술 』, 2005년 10월호, 171.
그럼, 지금부터 «Cosmo Cosmetic» 전시를 살펴볼까요?
이 전시는 국내외 9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화장’에서 연상되는 익숙한 이미지들에서 탈피하고 화장의 여러 층위와 해석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1. ‘화장’과 ‘위장’의 다양한 해석
가장 먼저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1층으로 들어서면 김지현과 김두진 작가가 신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영상 설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다섯 대의 모니터에는 붉은 머리, 붉은 드레스, 그물 스타킹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주인공이 넘나들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김지현의 <봄날의 간다>는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춤과 노래와 같은 공연 상황을 작품에 개입시킨 작업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화려한 아름다움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모니터에 신체의 일부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 이미지들은 마치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남겨진 껍질과도 같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진행됨에 따라 또 다른 이미지들과 중첩되고, 결국 화려함은 그로테스크한 흑백의 형상으로 변질됩니다.
‘봄날은 간다’는 작가가 직접 부른 노래로 독특한 정서와 우수, 사랑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름다움의 쓸쓸함이 고조되는데요. 김지현은 ‘봄날’의 찰나와 같은 표피적인 아름다움의 허상과 무상함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하 1층의 다른 한편에는 유명 영화배우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등장한 영상이 설치되었습니다. 김두진의 <Farewell to Mr.Arnold>는 남성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모습을 적으로부터 은폐시키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위장 화장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김두진, <Farewell to Mr. Arnold>, video installation, 5 min 20 sec, 2005.
Cosmo Cosmetic, Installation view at Coreana Museum of Art, 2005.
작가는 남성이 생존의 수단으로 화장(위장)을 하는 것처럼 여성들이 가부장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화장을 하는 것으로 보았어요.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화장과 위장은 모두 사회의 생존과 관련됩니다. 김두진은 이러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영화 이미지를 인용하고 변형하는 차용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처럼 남성의 얼굴이 시간에 따라 해체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견고한 남성성과 이분법적인 성차를 해체하고자 시도합니다.
이 모습들을 광고 이미지나 대중문화의 클립 영상들을 연상시키는 데요. 영상에서 들리는 ‘당신의 화장은 완전한 의미를 거부한다 Your make-up avoids all meanings’는 노래 가사처럼 모델의 얼굴은 고정된 의미작용을 거부하는 가벼운 표피적인 이미지들로 등장합니다.
2. 화장의 사회적 코드와 욕망
미술관의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밝은 조명이 비추는 대형 작품들이 펼쳐집니다. 특히 갤러리 왼쪽 벽에는 동일한 크기의 사각 액자에 끼워진 모노톤의 섬세한 색채 작업이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박미나의 <2005 코리아나 립스틱>과 <2005 코리아나 아이새도우>입니다. 작가는 이 전시를 위해 코리아나화장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립스틱과 아이새도우 색의 모든 컬러를 수집하고, 색상을 분류했습니다. 또한, 분류된 색을 색의 명칭들과 매칭시켜 색상과 이름들이 지닌 사회적 서사를 추출했어요. 화장품의 체계에는 성별과 나이, 인종에 따라 철저히 연구된 결과들이 반영되어 있는데요.
<2005 코리아나 립스틱>에서 작가의 주체적 개입은 철저히 배제되고 화장품의 전형화된 기호 체계와 견고한 정보만이 표상됩니다. 박미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평소 익숙하다고 여기고 있는 사회적 의미망의 다시 읽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고낙범은 전시장 기둥과 15m나 되는 벽면 전체를 붉은색 톤의 색 띠 작업, 미러볼 등의 오브제로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작가는 2000년에 직접 프로듀싱한 언더그라운드 여가수 ‘레이디 피쉬’의 공연 ‘그로테스크 레볼루션’의 무대공연을 전용해 전시장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합니다. 이전의 실제 공연이 ‘1막’에 해당한다면, 이번 작품 <2막>은 공연을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재해석한 ‘2막’인 것입니다.
전시장에는 왼쪽에 여가수가 화장한 정면의 모습과 그 옆에 정면과 헤어스타일이 드러나는 뒷모습이 오버랩되어 있는 사진 작업이 가구 위에 설치되었습니다. 여가수의 초상은 그녀의 뒷모습과 함께 재포착되면서 한 화면에 '자신을 바라보는 자아'와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자아'가 동시에 등장합니다. 여기서 관람자는 동시에 보여지는 ‘거울보기’의 미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실재 자아와 거울에 비친 허구로서의 자아 사이의 간극을 체험하게 됩니다.
<2막> 옆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유리병이 쇼케이스 안에 설치된 손정은의 <사랑 2005>가 선보였습니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방부액으로 조제한 액체를 유리병에 담아 화장품을 제작했습니다. <사랑 2005>는 화장품을 사랑과 유혹의 기술로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인간(여성)의 심리를 가시화한 결정적인 매체로 보고 이를 개념화시킨 것입니다. 작가는 화장이 표피적인 행위이자 그 이면에 소유와 획득의 권력욕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이를 오브제와 텍스트를 병행한 설치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투명한 유리 케이스에는 가시적인 물질들이 부재하며, 대신 화장의 행위에 내재된 ‘유혹’이라는 욕망에 대해 보드리야르나 보들레르가 언급한 텍스트 등이 적혀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연을 능가하는 인간 행위의 기교들과 유혹의 기술들을 의미화합니다. 손정은은 코스메틱을 둘러싼 권력, 유희, 가상, 욕망의 층위를 드러내고 이것이 허구이지만 결국은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실재일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Cosmo Cosmetic》은 이와 같이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화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을 조망하고, 화장의 지엽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 삶과 관련된 복합적인 의미들이 교차하는 하나의 장으로 화장의 의미를 확장한 전시였습니다.
더하여 본 전시는 그간 화장품 회사들이 시도해왔던 화장품의 재료나 색채의 특수성을 내세우고 화장 행위와 창작 행위의 유사성을 부각시키는 일차원적인 전시 방식에서 탈피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미술평론가이자 계원예대 교수인 유진상은 «코스모 코스메틱»을 2003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클리오의 «화장품은 미디어다»와 비교하면서 “참여 작가들이 보여준 주제의 해석은 시간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모두 주제를 각각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화장의 다층적인 지형도를 살펴보면서 화장에 대한 열린 해석과 그 경계를 삶의 문제와도 연결시킨 《Cosmo Cosmetic》은 코리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국내외 동시대 미술 현장의 다양한 시선을 담아낸 전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 히스토리 열아홉 번째 이야기 《Cosmo Cosmetic》,
현대 작가들이 풀어내는 시각적 언어를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최근 젠더와 LGB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은 더 이상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젠더와 인종을 넘어서는 표현 수단으로서 동시대 작가들에게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2022년 영국의 터너상(Turner Prize) 후보에 오른 캐나다 출신의 신 와이 킨 Sin Wai Kin(1991~)은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해체하는 수단으로 화장과 치장을 합니다.
신은 중국 연극에서 나타나는 화장기법이 색을 통해서 슬픔이나 기쁨의 표정을 표현한다는 것에 영감을 받아 눈살을 찌푸리는 듯한 얼굴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체형을 덧붙이고, 직접 제작한 의상을 입고 본인의 정체성과는 다른 페르소나로 퍼포먼스에 임합니다. 이후 화장한 얼굴을 물티슈에 찍어내며 마무리를 하는데요. 이 물티슈에는 작가의 피부와 땀, 그리고 우리가 천하다고 여기는 몸의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물티슈를 '데스 마스크(death mask)'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는 매번 퍼포먼스마다 다른 화장을 하기 때문에 물티슈는 매번 다른 캐릭터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동시에 그 순간의 작가의 표정을 포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기록물로서 최종 결과물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화장’은 동시대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행위이자 주제이며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망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히스토리는 지난 4월부터 '신체'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들을 다루었습니다. 다음 전시 히스토리에서는 신체에서 만들어 내는 소리에 주목한 «THE VOICE»를 살펴볼 예정인데요. 계속해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작성 및 정리_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 심연정
©코리아나미술관, 202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고 자료
코리아나미술관, 『Cosmo Cosmetic』 (코리아나미술관, 2005).
허문명 기자, [2005프로가 뽑은 프로] <1> 미술, 『동아일보』, 2005년 12월 21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51221/8258916/1
김미진, 「화장에 관한 예술적 시각」 , 『아트인컬쳐』, 2005년 9월호, 142-143.
윤동희, 박신의, 서진석, 유진상, 「젊은 작가 프로모션, 이대로 좋은가?」, 『아트인컬쳐』, 2005년 10월호, 161~162.
김형미, 전시 리뷰 「‘화장’이 갇힌 틀의 확장과 의미의 무한 재배치」, 『월간미술』, 2005년 10월호, 170-171.
Mary-Ann Russon, K-beauty: The rise of Korean make-up in the West, BBC (21 October 2018) https://www.bbc.com/news/business-45820671
"네이버 캐스트: 화장의 역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0329&cid=59020&categoryId=59032
아나 아우라 알라에즈(Ana Laura Alaez) 작가 웹사이트, https://www.analauraalaez.com/
아나 아우라 알라에즈의 <Superficiality> 작품 영상, https://vimeo.com/39394471
아트 바젤, "Meet the Artist: Sin Wai Kin"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bpdjLCuXrk
O. H. FLETCHER, Interivew with Sin Wai Kin, The White Review (September 2021),
https://www.thewhitereview.org/feature/interview-with-sin-wai-kin/
*<전시 히스토리> 연재는 코리아나미술관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