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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히스토리 #20 《THE VOICE》: 목소리 다시 '보기'

  • 미술관 학예팀


#20

더 보이스

THE VOICE

2017.4.20.-7.1.


참여작가

주디스 베리, 존 케이지, 차학경, 제레미 델러, 미카일 카리키스, 김가람, 김온, 라그나 키아르탄슨, 브루스 나우만, 재닌 올레슨, 이세옥, 슬라브스&타타스


201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 전시






보이는 것이 지닌 상대적 불변성, 견고성, 지속성과는 대조적으로 목소리는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며,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이고, 지나가며, 명확하지 않은 외곽을 지닌 것이다.

– 믈라덴 돌라르 Mladen Dolar






돌라르가 말한 바와 같이 목소리는 보이지 않고, 발화된 후에도 공기 중에 흩어져 금세 사라져 버립니다. 이처럼 불명확하고 순간적인 목소리의 속성이 시각예술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요? 그리고 예술가들의 주제로서 어떻게 탐구되고 있을까요?


코리아나미술관은 '신체body'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전시를 통해 심층적으로 탐구해왔습니다. 신체의 '후각'을 다각도로 살펴본 《쉘 위 스멜 Shall We Smell》(2007)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거대한 감관인 피부를 주제로 한 《울트라 스킨 Ultra Skin》(2009)'예술가의 신체'라는 주제를 21세기 관점에서 재해석한 《예술가의 신체 Artist Body》(2010), 머리카락의 사회 문화적 함의와 변이적 속성에 주목한 《쇼 미 유어 헤어 Show Me Your Hair》(2011) 등을 선보이며 신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이어왔습니다. 나아가 '몸'과 '수행성'에 주목하며 퍼포먼스에 대한 연구로 확장하였고, 이는 《퍼포밍 필름 Performing Film》과 《코드 액트 Code Act》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2017년에 새롭게 선보인 국제 기획전 《더 보이스 The Voice》는 존케이지, 브루스 나우만, 차학경 등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작가들과 더불어, 주목받는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목소리'를 주제로 신체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코리아나 미술관 《더 보이스 The Voice》 전시 전경, 2017.





그럼, 오늘은스무 번째 전시 히스토리에서는 《더 보이스 The Voice》를 통해 시각예술 속에 침투한 목소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시작할게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상대방을 알아챈 경험이 있나요?


직접 보지 않아도 누군가를 식별할 수 있게 만드는 목소리의 특성은 ‘성문’, 즉 제2의 지문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다른 발성 기관의 구조는 소리의 높낮이와 성대의 떨림, 주파수의 분포 등 서로 다른 공명을 만들어 내며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형성합니다. 알고 보면 목소리는 이목구비나 외형보다도 우리를 더욱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죠.

목소리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고 생각을 밖으로 꺼내기 위한 매체이기 때문일까요? '목소리'의 사전적 정의에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은 감각적 의미뿐 아니라, '의견이나 주장'을 이르는 사회문화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중의성은 영어의 voice, 중국어의 '呼声(hūshēng)’', 프랑스어의 voix 등 여타 언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 부딪혀 나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경험과 정체성, 여러 사회 문화적 의미가 교차하는 것입니다. 말하고, 울고, 웃고, 노래하고, 대화를 나눌 때와 같은 일상적 경험들과 목소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의견이 되어 나타나는 목소리가 언제나 모두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체 밖의 존재들에게는 때로 침묵이 강요되기도 하고, 다른 주체가 이들의 의견을 대리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해지기도 하지요. 탈식민주의 학자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주창한 것처럼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서발턴은 과연 말할 수 있는가”를 반문하며, 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말을 건네야만 합니다.



Hugo BallKarawane, Zurich, Switzerland, 1916, Sound poem (performance) Source: Dada Almanach. Berlin: Erich Reiss Verlag



한편, 목소리가 가지는 감각적 측면은 현대미술에서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후고 발(Hugo Ball)을 위시로 한 다다이스트들은 무의미한 말장난을 운율에 맞춰 내뱉는 음성시 sound poetry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언어가 가지는 관습적 의미를 해체하고 이성에 대한 반발로써 작동합니다. 다다이스트가 육성을 통한 음성 그 자체에 주목했다면, 플럭서스 운동에서는 목소리가 작품 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플럭서스에 이어 이벤트,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예술적 수행은 영구적이기보다, 일시적으로 보이고 사라지며 ‘지금,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촉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일시적이며 순간성을 수반하고 있는 목소리의 특성과도 잘 결합되며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매체로써 활용되었지요. 목소리를 통한 수행들은 일종의 사운드 아트로서의 특성을 띄며 계보를 이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더 보이스 The Voice》 에서는 단순히 사운드아트를 선보이기 보다 소리에서 창발한 공감각적 실험에서부터 사회문화적 맥락과 의미를 내포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사적, 미학적 재발견을 시도하고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미적 장치로 다루어지고 있는 목소리를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영상, 설치, 사진,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고, 형식에 있어서는 작가 자신이 전면에 등장하거나, 대리자(퍼포머)를 매개하거나, 목소리와 언어의 관계성을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제 작품과 함께 전시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텐데요,

먼저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1층에서는 존 케이지, 브루스 나우만, 차학경, 슬라브스 타다스, 마일리 카리키스, 주디스 베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존 케이지 John Cage


John CageAria, holograph in ink, 20 leaves, 18x26cm, each, 1958. Music Divisio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 Astor, Lenox and Tilden Foundation.


지하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는 다양한 언어로 쓰인 지시문과 구불거리는 선이 그려진 그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림 앞에는 보면대와 함께 악보가 놓여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작업이기도 한 존 케이지(John Cage)의 <Aria>입니다. 케이지는 플럭서스 운동과도 맥을 함께 한 작곡가로, <4분 33초>로 잘 알려진 초기 사운드 실험의 선구자이지요.


작품은 정확한 음계를 구별하기 어려운 비정형의 선으로 이루어진 악보인데요, 케이지는 음표나 부호 대신 선과 색 등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 퍼포머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불명확한 외관을 지닌 목소리를 시각적 요소로 환원하고자 한 실험이지요. 따라서 악보는 퍼포머의 해석에 따라 높낮이도, 길이도, 떨림도 조금씩 다른 연주를 형성하게 됩니다.


악보만 보고는 어떤 소리로 구현될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The Voice》에서는 전시 오프닝 퍼포먼스로 김주영 퍼포머를 통해 <Aria>를 선보였답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감상할 수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루스 나우만 Bruce Nauman


Bruce NaumanLip Sync, Single channel video, 57min, black and white, sound, 1969. Courtesy of Electronic Arts Intermix(EAI), New York.



거꾸로 뒤집힌 이 영상은, 1960-70년대 비디오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신체와 감각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온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초기 실험 영상 <Lip Sync>입니다. 나우만의 작업은 소리와 이미지의 물리적 시차를 만들어 두 감각의 충돌을 발생시킵니다.


영상 속에는 클로즈 업된 작가의 입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1시간가량 반복적으로 ‘립 싱크’라는 단어를 내뱉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입 모양과 소리가 어긋나면서 소리는 개별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영상 이미지는 익숙한 입모양에서 붕괴되어 위아래로 움직이며 열리고 닫히는 낯설고 둥근 구멍으로 지각되게 됩니다.



주디스 베리 Judith Barry


Judith BarryVoice Off, Two-channel video-sound projection, 15min, dimensions variable, 1998-1999. Installation view: “The Voice” at Coreana Museum of Art.


케이지와 나우만이 감각적 차원에서 시각과 청각을 가로지르는 시도를 하였다면, 디지털 이미지와 사회 문화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미국의 비디오 설치 아티스트 주디스 베리(Judith Barry)는 실제 우리가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감각할 수 없지만 의식과 심리적인 차원에서 존재하는 목소리를 탐구합니다.


우리는 성대의 떨림과 공기의 파동을 통해 신체 외부로 소리를 내보낼 때, 의식과 생각을 결합하여 발화합니다. 그런데 신체 외부로 내뱉지 않은 상태에서도 흔히 ‘마음의 소리’라고 불리는 것이 머리속을 떠돌고 있지요. 분명 들리지 않지만 마치 들리는 것처럼 의식 어딘가에서는 소리들이 부유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마음의 소리를 꺼버리고 싶지 않으신가요?


주디스 베리의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 <Voice Off> (링크)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히스테릭하게 쫓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던 남자는 들려오는 소리에 방해를 받고, 그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더 불안하고 히스테릭하게 목소리의 근원을 찾고자 합니다. 결국 방의 벽을 뚫고 부수지만 깜깜한 공간만이 존재할 뿐 소리의 근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 너머의 소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작품은 중앙에 놓인 가벽 앞뒤로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송출되고 있는데요, 남자가 벽을 뚫고 나가는 것처럼 관람객은 한쪽 벽의 커튼을 통해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다른 한쪽 벽에서 송출되고 있는 영상에는 뿌연 연기가 차오르고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공간 속에서는 몇몇 인물들이 등장하고 독백, 노래, 대화 등 다양한 목소리가 중첩됩니다. 이는 곧, 벽 너머에 있는 남자의 귀에서 웅성거리는 것들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개인적인 생각들, 어디에선가 들었던 이야기, 노래, 소음 등을 의식화하게되고, 불현듯 그러한 것들은 중첩되어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하기도 합니다.. 주디스 베리의 작품은 이처럼 일상 속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목소리에 대한 경험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Theresa Hak Kyung Cha, Mouth to Mouth, Single-channel video, black and white, sound, 8min,1975. Courtesy of Electronic Arts Intermix(EAI), New York.


한편 목소리에는 그 의미적 차원에서 사회문화적 요소와 함께 논의되기도 합니다. 20세기 후반에는 탈식민주의 담론과 함께 주로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논의와 함께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의 작업은 하위 주체의 발화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차학경은 여성과 이주, 언어,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문학, 예술, 퍼포먼스를 아울러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온 한국계 미국 이주 여성입니다. 앞서 목소리의 정의에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외에도 발화자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포하는 의미가 담겨있었지요. 작가는 당시 사회 속에서 ‘이민자-아시아계-여성’이라는 여러 차례 주변화된 목소리가 어떻게 묵인되고 지워지는지 목도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강요받은 침묵을 공표해 왔습니다.


<Mouth to Mouth>에서 작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망을 형성하지 않는 한글 모음 중 일부가 빠진 8개의 모음을 내뱉고 있습니다. 작품 속의 입모양을 따라 들려와야 할 소리는 흐르는 물소리에 가려 들을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바라보는 관람객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미국 사회 내에서, '한국계 미국인 이주 여성'이라는 하위 주체-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지워지고 잊혀지며 끊임없는 침묵 속에 갇혀 있는 여러 타자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지하 2층으로의 길목에서 김가람의 프로젝트 포스터를 마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c-cube에서는 김가람, 이세옥, 제레미 델러, 김온, 라그나 키아르탄슨, 재닌 올레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김가람 Ga Ram Kim

- SOUND PROJECT by 4ROSE,2014-ongoing


김가람, 4ROSE poster wall & ceiling, digital print on paper, dimensions variable, 2017.


앞서 차학경의 작품을 통해서 말할 수 없고 묵인된 목소리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위 주체’로서의 정체성이 세계에서 소외되고 억압되었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편, 인터넷 이후의 시대에는 오히려 주체의 지위와 정체성까지 지워진 세계 속에서 발화하는 존재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바로 인터넷의 익명의 소리, 댓글입니다.


자기 주체를 드러내지도, 심지어 신체를 입지도 않는 온라인 세계에서는 거대하고 평등해 보이는 아고라가 형성됩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은어’들이 창발 되면서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제3의 주체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등의 실험으로 접근해 온 김가람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운드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 댓글 문화를 사회적 이슈 전달을 위한 목소리로 활용합니다.


작가는 가상의 걸그룹 4ROSE를 통해 인터넷 댓글을 가사로 한 곡을 발매합니다. 프로젝트는 대중에 의해 형성되는 문화인 ‘가요’를 형식 삼아, 익명의 다수들 - 곧 대중의 소리를 재전달합니다. 작품을 위해 작가는 이슈가 되는 사회적 사건을 선택하고 그와 관련된 댓글을 수집한 후 가사를 배치했습니다. 편집된 가사는 텍스트 음성 변환 프로그램인 TTS(Text to Speech)를 이용하여 음원으로 만들어져 아이튠즈나 멜론, 유튜브 등에서 다운이 가능하도록 배포되었습니다.




김가람, The Red Wall, Red paint on MDF, lights, eyelets and inkjet print on papers, 575x220x15cm, 2017.


<The Red Wall>(2017)은 그동안의 음원 작업을 텍스트 형태로 출력한 작품입니다. 인터넷 댓글로부터 출발해 청각화된 작품이 다시 텍스트 형태로 보여진 것인데요. 해당 작품의 텍스트는 관람객이 한 장씩 수집해 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음원 속 목소리는 어느 누구의 목소리로도 볼 수 없지만 동시에 다수(대중)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형식과 내용 간의 이중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지점으로 여겨집니다.


김가람은 전시와 연계하여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관객 참여형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전시와 함께 작품의 제작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별 작사를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조별로 제작한 작사곡을 발표하고, 그중 우승 팀은 작가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거쳐 음원으로 제작되었답니다.


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은 <참.나.원>입니다. 학생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회문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링크)를 통해 감상해보세요.



김온 On Kim



김온How to Use the Voice between Memory and Writing, Installation; [sound] 1 hour 3 min.; [text] inkjet print on paper and paint on wall, 150x112cm, each, paper tape, amp, microphone, microphone stand, texts from Franz Kafka “A Dream”, 2017. Installation view: “The Voice” at Coreana Museum of Art.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목소리는 어디쯤 놓여있을까요? 김온은 <기억과 기록사이의 목소리 사용법>을 통해 읽기와 쓰기의 새로운 면모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김온은 쓰기와 읽기, 듣기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와 실험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여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실험 가운데에 '목소리'를 놓아두고 공감각적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시장 벽면의 잘린 종이 조각들은 두 줄의 검은 테이프 아래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의 글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꿈』에서 발췌한 6페이지의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는 각각 잘린 후 하나의 장으로 재조합됩니다. 옆에 놓인 스피커에서는 건조한 낭독이 흘러나옵니다. 낭독되는 문장들은 카프카의 텍스트에서 마침표 앞의 단어들만 임의로 읽어낸 것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는 불안한 문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잘린 종이 조각 위에 놓인 텍스트를 읽고, 분절되어 나열되는 소리를 들으며 시각과 청각의 혼동을 경험합니다.


작품에서 형식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즉흥성’과 현장성’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로 연계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퍼포먼스에서는 김태용 소설가와 배수아 소설가가 낭독을 진행하고, 김혜빈 타이퍼는 낭독한 소리들을 작성합니다. 낭독을 따라 기록된 텍스트는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송출되어 관람객이 볼 수 있게 합니다. 퍼포머가 낭독할 텍스트는 잘려 뒤죽박죽 조합되었고, 그 위에 검은색 테이프가 교차되어 불분명하게 보이는 텍스트입니다. 이에 낭독자는 선형적으로 글을 읽어내릴 수 없기 때문에 읽어 내려가는 텍스트와 함께 새로운 글짓기를 시도하게 되고, 간혹 머뭇거림과 불규칙적인 분절 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두 명의 낭독이 동시에 교차하여 스크린 속에서 하나의 텍스트로 구성되는 과정 또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김온, <기억과 기록 사이의 목소리 사용법> 리딩 퍼포먼스

일시: 2017년 6월 17일 (토)

장소: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2층 전시실

리딩 퍼포머 ; 김태용_소설가, 배수아_소설가 & 번역가

타이핑 퍼포머; 김혜빈




라그나 키아르탄슨 Ragnar Kjartansson

Ragnar Kjartanssonsong,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6 hours Performed at the Carnegie Museum of Art, Pittsburgh, 10-27 March, daily, 2011. Installation view: “The Voice” at Coreana Museum of Art.



The weight of the world

is love.

(...)

No rest

without love,

no sleep

without dreams

of love–


「Song」_ Allen Ginsberg

김온의 퍼포먼스에서 두 명의 낭독자를 통해 기록된 텍스트가 카프카의 원형의 글에서부터 새롭게 환생했다면, 라그나 키아르탄슨(Ragnar Kjartansson)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겨진 텍스트 일부를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맥락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아이슬란드 출신 예술가 키아르탄슨은 주로 공간 속에서 연출된 무대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래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시장에 설치된 푸른색 커튼 너머에는 3명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키아르탄슨(Ragnar Kjartansson) <Song>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남겨진 엘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시 「Song」의 일부분에 멜로디를 입혀 퍼포머로 하여금 계속해서 반복하게 합니다. 공명하며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마치 최면을 걸듯 공간 속에서 부유하고, 반복되는 목소리와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영상은 순환적 구조를 환기합니다. 이들의 몽환적인 노래에 마치 신화 속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Siren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는 전체 시의 몇 구절만이 세 명의 퍼포머를 통해 6시간 동안 반복됩니다. 키아르탄슨은 반복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하고, 의례 ritual에서 행해지는 반복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멜로디를 입힌 짧은 텍스트는 목소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기존의 서사적 구조를 해체합니다. 또한 기록된 영상 작품에서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시공간을 응축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관람자에게 감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면 광활한 들판, 욕조, 교회 등의 공간에서 퍼포먼스가 수행되는데, 저마다 무대 공간을 특정하는 소리들을 청각적으로 담아내어 생생한 소리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참고: Death is Elsewhere_링크)



폐허의 시대적 우울을 인정하면서도 그 벡터에 내재된 에너지를 더욱 잘게 쪼개거나 흩뿌리는 방식으로 ‘소진’시키지 않고, 기계적이지 않되 인간적이라 할 불규칙한 ‘반복’을 통해 모으고, 때론 주술적으로 강화하는 <Song>.


곽영빈, “너의 얼굴이 ‘들린다’”, 아트인 컬처, 2017년 6월호. pp. 66-69.




전시는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서 주제의 이해와 실천을 확장했습니다. 앞서 작품과 함께 소개해 드린 존 케이지, 김온, 김가람의 작품과 연계한 퍼포먼스 및 프로그램, 의학, 영화, 미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목소리에 접근할 수 있는 학제간 포럼, 소리의 치유성에 주목한 <보이스 테라피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보이스 테라피 워크숍은 목소리가 가진 치유의 힘을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보이스 씨어터 ‘몸MOM소리’ 대표인 김진영 대표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보이스 테라피의 관점에서 목소리는 몸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 환경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닫혀 있던 소리를 열고, 자기 안의 소리를 찾고, 다른 이들과 소리로써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치유의 힘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프로그램은 스페이스씨의 특별한 공간, 옥상 정원에서 마무리되며 더욱 생생한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전시 히스토리와 함께 한 《The Voice》, 어떠셨나요?

김가람 작가의 작품에서 TTS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기계 목소리처럼, 목소리가 꼭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입니다.


동물의 의식을 둘러싼 여러 이견은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동물들도 자신의 특정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냅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를 발생시킨다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식물이 단순히 소리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리적 상태를 소리로 발현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천선란의 소설 『천개의 파랑』에서는 등장인물 ‘나인’이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데요,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식물과 소통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lants Produce Ultrasonic Clicks under Stress", sci-news



이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동물과 식물 등 수많은 대상들이 내뱉는 소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리를 교차시키고 공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모두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서로의 움직임 속에서 공유하며 곁에서 감각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이 특별한 감각은 코리아나미술관 *c-lab에서 선보인 전시인 《점, 곁에서 말하는 점들》(링크)에서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다이애나 밴드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c-lab 6.0의 주제인 ‘공진화’와 함께 그려집니다. 6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되니 예약하고 방문하셔서 ‘곁에서 말하는 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계 맺는 경험되길 바랍니다.



다음에 이어질 전시 히스토리는 《re:Sense》를 소개합니다. 전시는 박혜수, 전소정 두 작가를 통해 다양한 감각을 수용하고 번역하는 예술가의 행위와 감각 사이의 교차와 전이에 주목하였답니다. 다음 전시 히스토리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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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및 정리_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 조미영

©코리아나미술관, 202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고자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목소리가 남긴 증거: 보이스피싱 음성 검색 기술” https://www.nfs.go.kr/site/nfs/newsletter/NlPastViewPop.do?master=&aid=1385&ssid=1&mvid=170 (2022.06.07. 접속)

곽영빈, “너의 얼굴이 들린다’”, 아트인 컬처, 20176월호. pp. 66-69.

로절린드 C. 모리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외 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태혜숙 역, 서울: 그린비, 2013.

서지은, “THE VOICE”, THE VOICE전시도록, 코리아나미술관, 2017, pp. 8-14.

Sergio Prostak, "Plants Produce Ultrasonic Clicks under Stress", SCI NEWS, Dec 11, 2019. http://www.sci-news.com/biology/plants-ultrasonic-clicks-07895.html (2022.06.09. 접속)

 

 

 

 

*본 시리즈는 코리아나미술관 네이버 블로그와 포스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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