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23.12]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특집 원고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월간미술 2023.12. vol. 467 pp.102-105
2023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특집 원고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서지은 ㅣ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2023년 상반기, 코리아나미술관과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 진행된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은 '기관의 개관 2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기관의 특정 시점을 기념한다고 하면 기관의 과거 행보를 돌아보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가 많은 편인데, 이러한 상투적 성격보다는 기관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있는 고찰을 담은 전시를 마련하는 것으로 2021년 기획 초기 방향을 설정했다. 스페이스 씨는 2003년 개관 이래,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설립 취지에 따라 한 건물 안에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코리아나미술관과 전통화장문화를 연구하고 선보이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을 함께 운영하며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제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국내에서 이 둘은 상당부분 다른 영역으로 취급되고 관리되는 터라, 한 공간에서 함께 운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듯 국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스페이스 씨의 개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은 현대미술가 신미경을 단독으로 초청하고, 스페이스 씨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적극 활용해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인 관점으로 선보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공간적으로도 미술관, 박물관 총 4개 층을 모두 이번 전시의 무대로 활용하였다. 두 개 층의 미술관에서는 신미경의 신작에 집중할 수 있는 전시 공간(B1 c-gallery)을 구분하여 마련함과 동시에, 또 다른 공간(B2 c-cube)에서는 미술관의 소장품과 작가의 작품을 교차시켜 서로 다른 분위기의 두 공간을 연출했다. 반면, 박물관식 전시 어법 안에서 소장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5-6층의 공간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되, 작가의 작품과 몇 백 년의 시간을 품은 유물들이 서로를 비추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전시의 맥락을 만들어냈다. 작가 신미경을 단독으로 내세웠지만 작가의 작품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소장품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기에 일반적인 개인전과는 차별화된 방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기획 초기부터 막바지 전시를 완성하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작가와 미술관 학예팀이 작가 작업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또 온라인으로 밀도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전시의 구성 요소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전시는 두 가지 주축으로 이루어졌는데, 먼저는 ‘뮤지엄(미술관과 박물관)’이다. 뮤지엄은 시간과 물질이 축적된 공간이다. 복합적인 역사, 연대와 서사가 공존하는 뮤지엄의 본질적 기능은 ‘수집(collection)’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코리아나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은 설립자인 송파 유상옥 회장의 컬렉션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 회장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취미로 70년대 초반부터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지난 50여년간 개인 수집가로서 발품을 팔아 동서고금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한 점, 한 점 모아왔다. 한편, 중견 조각가 신미경은 비누를 예술적 질료로 선택해 ‘시간성’을 탐구하며 지난 30년 가까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수천 년 전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상이나 동양의 도자기, 불상 등 문화적 생산물들을 비누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신미경은 화장실에 비누조각상을 두고 관람객이 사용하게 하거나 야외에 비누 조각을 설치해 비, 바람, 온도 등에 의해 닮아지고 물질이 소멸되는 과정 자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둘은 시간과 물질을 경유하며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며 ‘되어가는(becoming)’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시간(time)과 물질(material)이 신미경의 작업과 스페이스 씨의 미술관, 박물관을 관통하는 큰 주제라면, 전시의 영문 부제 ‘performing museology’는 이를 작동하게 하는 구조를 나타낸다. 이는 박물관 연구자인 키르셴블라트-짐블레트(Barbara Kirshenblatt-Gimblett)가 쓴 용어를 가져온 것인데, 그는 뮤지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informing)의 장소로서 기능하는 것에서 벗어나 ‘performing museology’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의 국문 제목에서는 상응하는 표현을 고심하던 끝에 ‘생동하는 뮤지엄’으로 정했다. 결국 뮤지올로지의 수행성이 뮤지엄을 생동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은 작가와 미술관, 박물관의 교감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전시 기획에 있어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 분모를 지닌 세 요소를 어떻게 서로 교감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했다. 뮤지올로지 안에서 여러 시간과 물질의 층위들을 교차시키며 다층적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통해 각 요소를 경험하고 고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기관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예술적 질료가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가변적 물질인 비누를 자신의 예술 세계로 끌어들여 전문성을 획득한 신미경은 축적된 훈련의 시간을 통과해 정교한 기술로 고전을 번역하고 자신 만의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과거'로 여겨지는 것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동시대성을 불어넣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작가의 태도는 앞서 언급했던 스페이스 씨의 설립취지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그 둘의 만남은 서로를 생동하게 했다.
이 둘의 만남에 많은 분들이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셔서 감사했다. 전시의 컨셉과 작가의 선정이 미술관의 정체성에 부합되어서 좋았다는 평이 많았고, 또한 일반 관람객들도 난해하지 않게 전시를 읽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코 끝을 자극하던 향긋한 비누 향은 이제 사라졌지만, 20주년을 맞이한 코리아나미술관도, 30년 가까운 시간을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데 전념해 온 중견 작가 신미경도 자기 존재와 역할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며, 계속해서 갱신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전시정보
전시제목: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시페이지 링크)
전시기간: 2023년 3월 2일 - 2023년 6월 10일
전시장소: 코리아나미술관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참여작가: 신미경
전시총괄: 유승희_코리아나미술관 관장
책임기획: 서지은_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기획/진행: 심연정_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 조미영_코리아나미술관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
진행지원: 김민정_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책임 학예연구사, 최소연_코리아나미술관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
그래픽 디자인: 강구룡
공간디자인: 프랍서울
공간조성: 스페이스 다울
작품운송,설치: 아트인 파인아트
사진, 영상: 아인아
출판 글: 서지은, 강수미, 테사 피터스
출판 번역: 신혜린, 전민지
주최,주관: 코리아나미술관
협력: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후원: (주)코리아나화장품,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