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25.06] EXHIBITION 《합성열병》: 새로운 이미지를 향한 인간과 생성형 AI의 협업, 그 경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월간미술 2025.6. vol. 485, pp,116-121 EXHIBITION 《합성열병》
새로운 이미지를 향한 인간과 생성형 AI의 협업, 그 경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진휘연 한예종 교수
모든 것이 통합되는 뜨거움
인공지능(Al)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여 이해, 학습, 추론, 문제 해결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최근엔 인간의 감각기능을 탑재한 멀티모달이 등장하면서 스스로 인지하여 사고하고 감각을 통한 정보 수집까지 자유롭게 진행하며 점차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컴퓨터를 사용한 디지털 아트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엄밀히 AI 아트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제작, 생성 능력, 정보 수집의 방대함, 인간을 넘어서는 다양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인해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제 AI는 예술의 영역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발 빠르게 반응하여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예측 불가능한 세계》와 울산시립미술관 《예술과 인공지능》에서 인공지능과 예술 현상전반을 다뤘다. 다양한 결과에 집중하다 보니 구체적인 방향 제시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인공지능은 모두의 관심이지만, 정확히 그 가능성과 미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을 드리우며, 뜨거운 반응만큼 기계미학에 대한 거부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동시대 미술, 특히 디지털 매체와 여성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온 코리아나미술관은 'A가 과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꾸렸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닝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무겁고도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한 일을 상기시킨다. 《합성열병》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거나, 그것의 구조에 초점을 맞춘 국내외 9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제목과 콘셉트는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1995)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아카이브가 단순히 기록과 기억에의 집착으로만 구성되지 않고 외부에서 그것을 파괴하려는 욕망이랑 모순의 조합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데이터의 수집을 통한 합성이라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와 그 뒤에 내재한 저항 또는 해체적 태도라는 양가적 방향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작가들의 두 가지 주제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트레버 페글렌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도 기계 시각의 선택 안에 내재된 인간들의 무수한 결정을 부각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개입과 인공지능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레픽 아나돌은 자연, 도시, 날씨, 뇌파 등 다양한 이미지를 데이터로 입력한 후 그것을 물감의 작은 유닛으로 변환하고 그 이미지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 이미지가 추상 회화의 단위로 변환되고 이것이 다시 동영상 디지털 아트로 수렴되면서 관격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전통적 미술의 목적을 만족시킨다.
현재 제작되는 AI 아트도 새로운 도구로서, 그것의 기술적 실험에 집중하는 작가와 이를 넘어 창작의 주체성, 저작권, 인간과의 경계 문제를 탐구하여 인공지능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과 미술 제도에 대해 발언하는 작가들이 있다. AI를 창작 파트너로 삼든, 주제로 전제하여 미술 매체의 역사를 살피든, 새로운 예술로 부각된 이 장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질문은 미술계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기술과 과학에 반응한 미술
코리아나미술관의 《합성열병》은 생성형 A를 연구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최신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결국 데이터와 그것의 변용이다. 어떤 소재이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알고리듬을 통해 비주얼로 전환시킬 때 발생하는 새로운 결과물들이 관객과 맺는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합성열병》에선 데이터에 대한 작가들의 수용방식을 예술의 계보, 역사와의 접점 속에서 찾아본다. 생성형 AI의 활용을 불러온 시각예술의 모색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거대 담론의 무게도 상실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을 보여준다. 첫째는 AI를 경유한 이미지들을 통해 매체로서의 인공지능 성격을 논의하는 메타-미디어적 태도이다. 정영호의 〈페이스 쇼핑> 연작, 요나스 룬드의 〈어떤 것의 미래>, 방소윤의 <폴리모프> 연작 등이 있다. 정영호는 생성형 AI가 제작한 사람 얼굴 6개를 이미지 사이트에서 구매한 후 휴대전화에 뜬 이미지를 카메라로 찍은 후,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해서 전시한다. <페이스 쇼핑>(2020)이란 제목은 매우 선정적이다. 인물화는 미술의 역사와 거의 완벽하게 겹치는 주제인데 기계가 만들어낸 인물을 예술이 전통적 대상처럼 접근하여 사진을 경유하여 제시한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생성형 인공지능과의 협업이기도 하지만 매체를 가로지르는 포스트 미디엄적 태도이기도 하다.
요나스 룬드는 상담실을 찾은 인간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불평하는 내용을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상 작품 <어떤 것의 미래〉(2023)를 전시한다. 상담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꾸미고 화면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한 왜곡된 형상들이 등장해서 7개의 상담을 이어나간다. 기술로부터의 소외감과 일자리를 위협당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현대 기술의 결정체를 통해 재현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방소윤은 〈폴리모프〉(2024~) 연작에서 머신비전, 생성형 인공지능의 퍼포먼스를 탐색하면서도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기계를 넘어서는 차이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세부가 섬세한 작은 브로치 가면을 만든 후, 인공지능에게 인지하도록 한다. 클립드롭(clipdrop)이란 물을 이용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후 그것을 보고 작가가 다시 회화로 옮겼다, 당연히 원본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확대된 회화의 표면질감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환상적으로 보인다. 관습적 아름다움이 기계 매체와의 협업 과정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가상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실사와 기계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왕래하며 그 경계를 질문하는 장진승의 <깊은 정찰: 스펙트럼 해독자〉(2025)는 기계 시각이 활발히 쓰이는 곳이 군사 분야이기에, 군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내용을 전개한다. 작가와 인공지능이 협업으로 제작한 소설의 탈논리적, 탈관습적 내용을 들려주는 김현석의 〈메모리즈〉(2025)도 매체로서의 인공지능의 다양한 측면을 실험한다.
전시의 또 다른 작품들은 인공지능 뒤 대기업의 존재, 거대 조직의 개입과 선택을 드러내고 있다. 싱가포르의 호 루이 안은 〈역사의 형상들과 지능의 토대〉(2024)에서 두 대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좌측엔 작가의 렉처 퍼포먼스 영상을, 우측엔 내용에 대한 인공지능의 실시간 이미지화를 송출한다. 싱가포르 역사를 과연 구글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며 그에 대한 이미지를 얼마나 명확하게 제시할까? 국제적 대기업과 인공지능이 거대 서사에 개입하는 과정을 드러내며 특정 국가와 이미지화라는 엄중한 관계를 통해, 새로운 기술혁명 뒤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그림자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AI가 한 국가의 가려진 조에 대한 공개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살피는 양아치의 <고스트 1.0.0>(2025)도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구글 어스의 이미지를 통해 데이터 센터, 반도체 산업단지 등 현대 첨단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들, 그러나 보안상 감춰진 시설들의 이미지 제공을 질문한다. 가상의 인물 설리가 화면 앞 중앙에서 관객과 비논리적인 문답을 나누는 형식을 통해 이 작동 시스템을 위한 많은 필수적 장소와 구체적 기술력의 유령 같은 존재를 현실로 현현시키도록 노력한다. 또 개인정보나 국가 안보 관련 데이터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한다.
프리야기타 디아의 <열대터빈>(2023)은 동남아시아 고무 플랜테이션과 식민 역사를 주제로 데이터 추출과 고무 플랜테이션의 유사성을 컴퓨터그래픽 영상으로 제작했고,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은 로렌스 렉은 83분짜리 영상 작품 <아이돌〉(2019)에서 미래에 펼쳐질 인간, 기계 간 경쟁과 협업을 주제로 음악극과 디지털 영상, 대중문화와 서사를 모두 통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미래의 역사와 기시감
작가들은 기술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여러 정보들이 물적 존재로 저장되고 취급된다는 통찰을 보여주며, 미술 매체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인간의 본성 등을 탐구한다. 예술 안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질문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진지하고, 많은 리서치를 통해 작품에 이른 것을 보여줌으로써 도전을 가시화한다.
거대서사가 소멸한 시대에 AI가 과연 새로운 것을 만드는가?'라는 야심만만한 질문에 대해 전시는 좀 더 전통적인 소재와 해결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들은 생성형 AI를 통한 감각적 결과물보다는 구글 같은 거대 국제기업, 그들이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며 그 사이에 역사, 국가, 권력, 그리고 욕망이란 익숙한 주제를 비튼다. 절대적 새로움보다는 이미지 제작의 다양한 과정과 새 매체의 관계를 드러내는데, 이 역시 시각예술의 낯익은 문제 풀이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전시는 시각적인 충격보다는 작가들의 질문과 문제의식을 더 부각시킨다.
결국 《합성열병》은 기계와 인간 간 소통과 질문의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을 더 잘 이해하려는 매우 인간적인 애정이 기반이 된 전시로 보인다. 진정한 합성은 데이터와 기계 사이에서 발생하기보다는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움의 창조는 이 둘 간의 합성에 달려있다.
전시가 직관적으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개념에 대한 전제가 각기 다르고 작가들의 접근도 상이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각각이 집중하는 질문은 유사하다. 기술, 노동, 자본, 관객, 미학, 역사, 경제 등의 주제와 섞인 이미지들은 인간과 기계의 교차를 통해 표현되지만 그 경계는 점차 희미해질 것인데, 오히려 이 과정에서 무수한 미술 역사의 층위들이 뚜렷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그 층위가 앞으로 어떻게 경계를 넘어 변화, 발전하게 될지가 더 큰 궁금증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