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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가이드 2025.08] 기업과 문화의 아름다운 동행: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코리아나미술관 유상옥 설립자, 유승희 관장

  • 윤태석

“space*c는 전통문화와 예술, 자연의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도시의 공간이다. 온고지신의 깊은 뜻과 열정을 모아 새로운 가치창조의 틀을 이루어 사회에 길이 공헌할 것이다.”space*c가 2003년 개관 당시 내건 선언문이자, 문화경영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설립 철학의 핵심이다. space*c에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이 있다. 우리 화장문화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국내외 예술가의 작품을 담아 펼쳐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은 한국 전통 화장문화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 전문박물관이다.



유승희 관장과 유상옥 회장


5,000여 점에 달하는 컬렉션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분합, 유병, 경대 등 여인의 삶과 미의식을 담고 있는 도구로 구성되어 상설전, 기획전, 외국 전시, 교육 프로그램, 출판 등 여러 문화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왔다. 반면 코리아나미술관은 현대 미술의 실험성과 담론 생산을 지향한다. 유승희 관장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젊은 시선을 더하며 미술관을 현대적 감수성과 국제적 흐름을 잇는 공간으로 재정비했다. 미술관은 여성성과 몸(body), 성(gender) 정체성, 기술과 시각문화와 같은 동시대적인 주제를 다룬 기획전을 선보이며 지속적인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기업의 미술관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 시대성과 책임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교감의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유 관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미술관 개관, 2003.11.20


이렇듯 두 기관은 각각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박물관이 전통의 미학과 실용미를 보여준다면, 미술관은 현재와 미래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 정체성인 ‘아름다움에 관한 탐구’를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확장하는 방식은 다른 기업문화기관 사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기업이 문화의 주체로서 어떤 소임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코리아나화장품이 보여주는 행보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 기업이 설립한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은 단순한 기업 홍보 수단을 넘어서, 기업의 철학과 미적 비전을 사회와 공유하는 문화적 실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코리아나화장품의 창업자인 유상옥 회장의 확고한 미의식과 유물 수집에 대한 집념이 자리한다. 유상옥 회장은 기업가로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에 걸쳐 한국 전통 화장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왔다. 그가 유물 수집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단순한 취미로서의 수집이나 개인적 애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산업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의 흔적, 특히 여성의 삶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던 화장문화의 유산들이 잊혀 가는 현실에 깊은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품은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옛 여인들의 삶과 일상에서 비롯된 미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모으게 되는 계기다. 그렇게 모인 유물은 단순한 소장품이 아닌, 한국 여성 문화사와 미의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었다. 그는 이를 기업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대중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설립했다.



좌)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프랑스 파리 전시 포스터 2006, 한국문화원, 2006
우) 유상옥 회장, 보관문화훈장 수훈, 2022


이 공간은 단지 유물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장문화가 지닌 사회적, 역사적, 심미적 의미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를 통해 관람자에게 다채로운 화두를 전파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했다. 유상옥 회장의 철학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에의 유물 기증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진짜 유물은 살아 움직일 때 의미가 있다.”고 믿었고, 개인의 수집이 아닌 공공의 공유자산으로 유산이 남기를 바랐다. 또한, 고향에도 유물을 기증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도 잊지 않았다. 이는 ‘아름다움은 나눌 때 완성된다.’라는 확고한 가치관의 반영이었다. 이러한 유 회장의 정신은 이제 딸인 유승희 관장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유 관장은 아버지의 수집 정신과 문화철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각을 바탕으로 코리아나미술관을 새로운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그는 과거의 유산을 단지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담론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코리아나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선보이는 *c-lab을 2017년부터 9년째 운영하며 실험하는 공간으로 진화케하고 있다.

이처럼 두 세대에 걸친 철학과 감각의 조화는 오늘날 코리아나화장품의 문화공간들이단지 기업의 문화 마케팅을 넘어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책임이 결합한 선도적 모델로 자리 잡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유상옥 회장의 수집과 기증, 유승희 관장의 기획과 운영이 맞물리며, 이들 박물관·미술관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기업의 문화적 정체성과 미적 비전의 결정체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루이뷔통재단 미술관, 프라다 재단, BMW 박물관과 같은 해외 기업 문화공간들이 설립자의 철학을 기반으로 예술과 사회를 연결해낸 사례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코리아나의 사례는 한국 전통문화, 특히 여성의 삶과 미학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독자적인 의의를 갖는다. 기업이 가진 자산과 철학이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형식 안에서 구현되고, 세대 간에 예술적 감각으로 계승되는 이 흐름은 한국 문화경영의 한 이상적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유상옥(兪相玉, 1933– ) 충남 청양 출생. 고려대 상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유니언대 경영학 박사. ㈜코리아나화장품 창업 및 회장,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코리아나미술관 설립(2003),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2002-2005). 국민훈장 모란장(1998), 아시아유럽미래학회 글로벌 CEO대상(2005), 문화훈장 옥관장(2009)·보관장(2022), 자랑스런 박물관인상(2024), 국립중앙박물관회 50주년 기념 공로패(금관 회원) 수상.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1993, 크리), 『화장하는 CEO』(2002, 행림출판), 『문화를 경영한다』(2005, 스위치코퍼레이션),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2018, 코드미디어) 등 저술.

유승희(兪承熹, 1964– ) 서울 출생. 중앙대 의상학 학사.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코리아나미술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회 YFM(2008-2014, 금관 회원),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사(2017-2023)·부회장(2024), 한국박물관협회 이사(2019- )·현대미술관회 이사(2020- )·국립중앙박물관회 이사(2021- ) 이사. 자랑스런 박물관인상(2018), 문화관광부장관 표창(200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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