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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2026.06] Critique 《Folding Acts: 리듬실험》 수행성과 부조의 존재론

  • 2026. 8. 6.

월간미술 2026.6 vol. 497, pp.140-141.  Critique 《Folding Acts: 리듬실험》


《Folding Acts_리듬실험》

코리아나미술관 4.2~5.30


수행성과 부조의 존재론

하상현 독립기획자


 《Folding Acts: 리듬실험》은 '실험자로서의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준비된 전시다. 전통적인 미술관이 작품을 수집 보존하고 원형을 전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험실은 물질을 일상의 상태에서 풀어헤치고, 다시 얽히게 하는 과정을 통해 물질의 새로운 쓰임과 원리를 발견한다. 영속적인 대상으로서 작품(work)가 아닌, 한순간 작동하고 이내 사라지며, 상황과 관계에 따라 변하는 '수행(performance)'은 본 전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여기서 'perform(수행하다)'이라는 동사와 form(형상)의 관계는 흥미롭다. 접두사 per-와 form의 결합은 행위와 형상의 관계를 지시한다. 형상은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동으로 매 순간 생성된다. 그렇다면 얼핏 조각과 회화처럼 보이는 사물들, 공고한 '형상'으로 가득 차 보이는 이 전시는 수행성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을까?


수행성

 언어학자 존 오스틴(John Austin)은 인간이 서로 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그는 언어가 사실관계를 지시하는 것을 넘어 '행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결혼식에서 부부의 서약처럼 약속이나 선언하는 말은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도 묘사하기보단, 두 사람의 미래의 행위들을 발생시킨다. 소금통을 달라는 손짓은 그것을 본 사람이 소금을 건네주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언어의 수행적 성격은 그 자체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을 반복해 온 제도와 사회적인 조건 아래서만 작동한다. 나아가 후기의 오스틴은 '사실을 진술하는 언어'조차도 어느 정도 수행적이 성격이 있음을 발견한다. 말하기는 누가, 언제 어떤 것을 말할 수 있는가가 규정된(규정 되어가는) '행위'이자 몸의 제스처이며, 이러한 말하기의 제스처는, 반복을 통해 정체성, 사회 규범, 제도를 발생시킨다. 조금 더 기본적이고 기이한 차원에서, 말하기는 단어와 문장을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고정하는 '수행적' 행위이기도 하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러한 언어의 수행적인 성격을 권력의 사례로 다시 읽으며, 태도, 몸짓, 몸의 배열이 상황 속에서 반복되며 동일한 규범, 정체성, 사회적 상황을 매 순간 재생산한다고 보았다.


퍼포먼스

 죽은 사물들을 보존하는 미술관이 어떻게 살아있는 신체와 사건인 퍼포먼스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미술사학자 로스리 골드버그(RoseLee Goldberg)는 『Performance Art: From Futurism to the Present』(1988)에서 퍼포먼스를 20세기 아방가르드 전체를 관통하는 충동으로 읽었다. 여기서 퍼포먼스는 단선적인 발전을 통해 발명된 특정한 매체가 아니라, 예술의 대상성을 해체하는 상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등장하는 욕망이다. 고정된 의미 체계를 공격하고 난장을 벌였던 다다이즘, 회화에서 회화를 만드는 신체 행위로 초점을 옮긴 액션 페인팅, 구조화된 상황과 사건을 설정한 헤프닝, 숙련된 기술의 오브제 예술에서 벗어나 예술을 일상의 행위로 확장하길 꿈꾼 플럭서스의 스코어, 물질의 단순화를 통해 관객의 몸과 이동, 신체적인 지속을 포함한 미니멀리즘 등은 퍼포먼스로 향하는 다중의 나선을 그린다.

이 중 회화를 제작하는 행위에 주목한 잭슨 폴록의 작업과, 이를 실제 공간에서의 해프닝으로 확장한 엘런 캐프로는 본 전시가 다루는 퍼포먼스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캐프로는 폴록의 작업을 다시 읽으며, 캔버스가 벽에 걸린 평면 오브제에서 바닥으로 내려온 순간을 지목했다. 여기서 회화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창(window)이 아니라 행위의 영역이자, 현장(arena)이다. 캐프로는 이후 캔버스라는 조건에서 벗어나 전시의 시공간 전체를 통해 감각 환경을 구성하였다.


부조의 존재론

 《Folding Acts: 리듬실험은 행위의 영역으로서 작품이라는 대상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그곳에  새겨진 유령적인 흔적을, 과거의 행위이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축적된 시간을 되짚어가길 요청한다. 이는 형상(form)과 이를 관통하는 행위적 시간(per-)중 어느 한쪽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둘 사이의 경합을 포함하는 방식이다. 전시에서 이윤정 정희민 임선구의 작업은 특히 이를 얇은 부조의 존재론을 통해 제시한다. 얇은 판의 형태는 보는 이를 향해 이미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 내부에 겹겹이 쌓인 피부와 각질층의 시공간을 마련한다. 또는 판의 뒷면을 동시에 제시하며, 항상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가능성을 확보한다.

 이윤정의 〈씨씨씨seeSEAsee〉(2026)는 몸 안의 축축한 것을 바다로 상정하고 이를 따라가는 안무 영상이다. 그는 혀, 장기, 세포 등 인간의 가시적인 표면이 아닌 신체 내부의 움직임과 시간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작업에서 이를 가시화하는 두드러진 대상은 표정과 얼굴이다. 마음이 나타나는 겉으로서 '표정(表情)', 얼이 드나드는 통로로서 '얼굴'은 내부를 번역해 드러내는 2차원의 검은 구멍으로서 외부와 접촉하는 인터페이스가 된다. 우리는 칼로 가르지 않고 몸의 내부를 볼 수 없기에 솔로몬처럼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내부를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윤정은 영상에서 얼굴을 잘린 상태로 보여주거나, 카메라의 화면으로 번역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신체를 찍어내는 검은 표면을 제시한다. 또는 접촉 마이크를 이용해 표면의 작은 움직임을 중폭해 감각하게 한다.

 정희민은 〈동이 트는 계곡에서〉(2025)와 같은 작업에서 캔버스의 표면에 잉크젯이 전사된 겔 미디움을 계속해서 덧붙인다. 이는 탈락한 피부 껍질이 계속해서 표면에 쌓이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는 내부에 구멍과 같은 공간을 마련한다. 계속해서 축적되고 겉을 밀어내는 표면은 겹겹이 층이 쌓인 단층, 나아가 내부의 해석할 수 없는 다수의 구멍을 만든다. 이는 루치오 폰타나가 캔버스를 도러내거나 폭력적으로 구멍을 뚫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2차원의 표면으로 소급되지 않는 뒷공간을 열어낸다. 지하층에서 볼 수 있는 〈풍화된 살갗〉(2024)은 피부-겔 미디엄 한 장의 표현과 함께 이를 가장 단순히 걸 수 있는 최소한의 구리관 구조를 제시한다. 동선 속에서 이어지는 〈낮은 달의 시간〉(2026)은 이 관계를 역전시켜 금속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2차원 패널에 상을 맺힐 수 있게 했다. 구조와 표면은 위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역동적으로 맺히며 그 사이의 틈을 통해 바람과 빛이 들어오도록 한다.

 임선구의 작업은 풍화 침식으로 움푹 파인 돌에 그림을 그린 듯하다. 회화의 뼈, 수직으로 벽에 걸리기 이전에 돌에 파인 구덩이. 그 구덩이에 수상한 액체가 모이듯 이미지가 모인다. '산은 무너지느라 돌을 떨어뜨린다'연작에서 작가의 그림 속 대상은 관찰자의 눈높이에 맞춰 중심 주제나 중심 대상을 형성하지 않는다. 털이 나 있어 기본적으로 신체처럼 보이는 이 콜라주 작업은 피부 표면에 기공, 터진 상처와 진물, 딱지가 돋아나 있다. 제목처럼 돌이 굴러떨어지듯, 화면의 대상들은 화면 하단에 떨어져 주체할 수 없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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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휴관 안내



전시 준비로 

2026. 8. 18(화) ~ 9. 9(수) 까지 임시 휴관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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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ana Museum of Art and Coreana Cosmetic Museum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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